'맏형' 이승훈과 10대 아이들
서로 밀고 이끌어 주며 경기
결승서 노르웨이에 아쉽게 패
이승훈 "뒤를 받쳐준 후배들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될 것"
셋이 하나가 돼 펼친 아름다운 레이스였다. 누구도 혼자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서로 밀어주고 이끌어줬다. ‘이승훈과 아이들’의 은빛 레이스는 감동 그 자체였다. ‘왕따 논란’을 일으킨 여자 팀추월 대표팀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21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결승전. 3번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맏형’ 이승훈(30)이 경험이 부족한 10대인 김민석(19)과 정재원(17)을 노련하게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노르웨이 대표팀도 비슷한 팀 구성이었다. 동계올림픽 4회 출전에 빛나는 노장 하바드 보코(31)가 무명인 스베레 룬데 페데르센(26), 시멘 스필레르 닐센(25)의 리더로 나섰다. ‘이승훈과 아이들’은 복병 노르웨이에 맞섰지만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강호들을 잇따라 제압하며 밝은 미래를 기약했다.
이승훈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남자 1만m 금메달과 5000m 은메달을 따냈다. 2014 소치올림픽에선 김철민, 주형준과 함께 팀추월에 나서 네덜란드에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승훈은 평창올림픽에선 두 고교생 김민석, 정재원과 함께 팀추월에 나섰다. 두 선수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승훈은 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잠재력을 일깨웠다.
이승훈은 평창올림픽 메달 유력 종목이 아니었던 5000m(5위)와 1만m(4위)에 출전해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체력 저하가 우려됐지만 결승에서 강점인 지구력을 앞세워 김민석과 정재원을 리드했다. 준결승에서 뉴질랜드에 막판 대역전승을 거둔 것도 이승훈의 리더십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승훈은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못 따서 아쉽지만 관중의 응원에 힘이 났다”며 “후배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줘서 고맙고, 앞으로는 나보다 더 잘 이끄는 후배들이 되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자 1500m에서 깜짝 동메달을 따낸 김민석은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 개인 메달을 2개로 늘렸다. 김민석은 자신의 롤모델인 이승훈과 함께 출전해 사력을 다했으나 아쉽게 4년 후에 금메달을 기약하게 됐다. 그는 “첫 올림픽인데 이렇게 값진 수확을 얻어 기쁘다. 나중에 내가 베테랑이 돼서라도 열심히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 같다”고 기뻐했다.
남자 팀추월 대표팀의 막내 정재원은 국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는 최연소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지난해 여름부터 한국체대에서 이승훈과 함께 훈련하며 호흡을 맞춰 왔다. 국가대표 선발전 5000m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장거리에 강한 정재원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정재원은 “형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다음 올림픽에서는 제가 형들에게 더 힘이 되어 금메달을 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릉=김태현 허경구 기자 taehyu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셋이 하나가 된 ‘은빛 레이스’ 아름다웠다
입력 2018-02-22 00:01 수정 2018-02-22 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