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매스스타트서 ‘유종의 미’ 거둘까

입력 2018-02-22 00:02
21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의 이승훈 김민석 정재원(왼쪽부터)이 시상대에서 수호랑을 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맏형 이승훈은 후배들을 독려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며 올림픽 3회 연속 메달 획득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강릉=김지훈 기자

2010년 2월 23일 캐나다 밴쿠버 리치먼드 올림픽오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세계 최강자인 스벤 크라머(32·네덜란드)는 예상대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6분14초60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이변이 있었다. 밥 데 용(42·네덜란드), 샤니 데이비스(35·미국) 같은 중장거리 강자들이 많았지만 2위로 들어온 선수는 한국의 ‘풋내기’ 이승훈(30)이었다. 기록은 6분16초95로 1위 크라머와 불과 2.35초 차이였다.

유럽 선수들이 독식하는 장거리 종목에서 이승훈의 은메달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무명의 신인이었다. 이승훈 이전에 장거리 종목에서 올림픽 메달을 수확한 아시아 선수는 없었다. 기세를 몰아서 이승훈은 열흘 뒤 스피드스케이팅 1만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년이 흐른 지난 18일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한국의 ‘뒷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 3바퀴를 남긴 순간부터 한국은 27.4초, 27.26초, 26.93초의 랩타임이 말해주듯 점점 속도를 높였다. ‘빙속 최강’ 네덜란드조차 마지막 3바퀴를 27.07초, 27.57초, 28.03초로 돌았다.

체력을 안배하다 막판에 모든 것을 쏟는 전략은 이승훈의 트레이드마크다. 다른 장거리 선수들과 달리 마지막 몇 바퀴의 랩타임을 점점 줄여가는 스퍼트를 자랑한다. 쇼트트랙에서 갈고 닦은 곡선주로 코너링 실력, 선천적 폐활량이 비결이다. 이승훈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남자 팀추월에서 한국 빙속에 사상 첫 은메달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제 이승훈은 남자 팀추월 대표팀의 맏형이 됐다. 어느덧 3번째 올림픽이다. 함께 뛴 김민석(19)과 정재원(17)은 고등학생이다. 평창에서 올림픽에 데뷔했다. 이승훈은 팀추월 8바퀴 가운데 4바퀴에서 선두를 책임졌다.

이승훈의 뒷심은 21일 뉴질랜드와의 준결승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한 바퀴 반을 남겨두고 뉴질랜드에 0.43초 차이로 뒤지던 한국은 순식간에 승부를 뒤집었다. 결승선 통과 기록은 3분38초82. 뉴질랜드(3분39초53)를 0.71초 차이로 따돌려 역전극을 만들었다. 비록 두 시간 뒤 벌어진 노르웨이와의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놓쳤지만, 이승훈은 올림픽 3연속 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이승훈이 오는 24일 매스스타트에서 빛날지도 관심이다. 그간 유럽 선수들은 이승훈을 집중 견제했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빙상단 감독은 “마지막 1바퀴에서 모두를 추월하는 이승훈이 얄밉기도 할 것”이라며 “협공에 대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원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