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도 아군도 없는 희한한 전쟁터 ‘시리아’

입력 2018-02-22 05:00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을 받은 동구타 지역에서 20일(현지시간) 한 노인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1일까지 나흘간 계속된 폭격으로 이 지역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70명을 넘어섰고 사상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AP뉴시스
"미사일·박격포탄이 비 오듯…" 3개월 동안 1000여명 사망
'시리아판 홀로코스트' 지적, 40만명 고립 대재앙 우려

적도 아군도 없는 시리아, 美 지원 쿠르드 반군과 손잡고 터키와 싸우는 희한한 상황도

주민 40만명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시리아 반군 거점 동(東)구타가 정부군의 연이은 폭격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21일까지 나흘째 이어진 공격으로 사망자가 270명을 넘기면서 ‘시리아판 홀로코스트(대학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21일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외곽 동구타 전역에 나흘째 공습과 포격을 벌였다고 전했다.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된 지난 18일 밤부터 누적된 사망자는 최소 274명이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시신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사망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사망자는 대부분 민간인으로 어린이가 60명에 달했다. 의사 3명이 숨졌으며 임신한 여성과 아기들이 팔·다리를 잃기도 했다고 영국 더타임스는 보도했다. 부상자는 1200명을 넘겼다.

무차별 공습에 현지 병원들도 부서져 6곳 중 3곳이 운영을 중단했다. 남은 병원에 환자들이 수용 능력 이상으로 쏟아져 부상자가 제대로 치료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폭격으로 숨진 환자도 적지 않다.

현지인들은 정부군이 반군과 민간시설을 가리지 않고 폭격했다며 참상을 전했다. 한 주민은 “미사일과 박격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주까지 3개월간 동구타에서 정부군 공격으로 숨진 사람이 700명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주 사망자를 포함하면 1000명에 가깝다.

시리아에서 몇 개 안 남은 반군 지역인 동구타는 정부의 봉쇄 조치로 주민들이 빠져나오지도,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물자가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이번 공습이 동구타를 테러리스트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주민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가디언은 시리아 정부의 동구타 봉쇄·공습에 대해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5년 세르비아계 군이 보스니아의 무슬림 마을 스레브레니차를 봉쇄하고 8000여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런 가운데 시리아 북부 아프린에서는 시리아 친정부 부대가 쿠르드 반군 지원에 나서면서 동맹 관계인 터키군과 충돌했다. 아프린에서 쿠르드 반군 소탕작전에 나선 터키의 공세가 장기화되자 시리아 정부가 주권 침해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에 나선 것이다. 다만 정부군을 직접 투입하지 않고 일종의 민병대를 파견했다.

시리아민주대(SDF)가 주축을 이룬 쿠르드 반군은 지난해 미국이 이끄는 국제연합군과 함께 시리아 북부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을 벌였다. IS 퇴출 이후 시리아에서는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적군과 아군이 뒤바뀌는 모습이다. 러시아와 이란 지지를 받으며 미국과 대립해 온 시리아 정부가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 반군과 손잡고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인 터키와 대립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