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10일 회동 예정됐었지만 北, 펜스 방한 행보에 반발
2시간 남기고 전격 취소 통보"
이방카 방한 때 北대표단 오면 북·미, 다시 접촉 시도 가능성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다음날인 지난 10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만나기로 했으나 직전에 불발된 것은 북·미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워싱턴에서는 미 국무부가 열흘이 지나서야 언론 보도를 확인하는 형식으로 회동 무산 사실을 시인한 것은 향후 북·미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북한과 미국이 서로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만으로도 향후 북·미 관계에 극적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조짐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등이 평창올림픽 개회식 이튿날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한국 측 배석자 없이 비밀 회동을 갖기로 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회동은 약속시간 2시간 전 북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취소됐다. 당초 미국 측에서는 펜스 부통령과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정보기관 관계자, 닉 에이어스 펜스 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할 예정이었고, 북한 측에서는 김여정과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이 나올 예정이었다고 WP는 전했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방한 중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하고 탈북자들을 만나는 등 잇따라 북한을 자극하는 행보를 보이자 이에 반발한 북한이 회동을 취소했을 것으로 WP는 추정했다.
북한이 무슨 이유로 2시간 전에 펜스 부통령에게 회동 취소를 통보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조영삼 북한 외무성 국장은 펜스 부통령이 방한하기 직전인 지난 7일 “미국에 대화를 구걸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적이 있고, 펜스 부통령도 지난 9일 개회식 행사장에서 바로 등 뒤의 북한 대표단을 외면하면서 북·미 대화가 성사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김여정과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내려보낸 것을 진지한 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 대표단 접촉을 승인했다고 WP는 보도했다. 펜스 부통령 방한 직전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 모두 ‘평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자’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에게 아무런 협상 권한을 주지는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펜스 부통령을 만나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미 간 대화 시도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25일 평창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는 것에 맞춰 북한이 대표단을 내려보내면서 북·미 접촉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펜스-김여정의 회담 추진과 불발 과정도 향후 본격적인 북·미 회담을 염두에 두고 미리부터 ‘힘겨루기’를 벌인 것일 수도 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투데이 포커스] 北·美 ‘담판’ 시도… 대화 문 열려있다
입력 2018-02-21 18:56 수정 2018-02-21 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