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한반도 운전자론’ 힘 실렸다

입력 2018-02-22 05:0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국민일보DB

美, 北과의 대화 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 확인
온기 살리는 게 당면 과제… 대북 특사 파견 중대 고비
올림픽 폐막식 참석 이방카 어떤 메시지 가져올지 주목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깜짝 접촉이 성사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대화 중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상호 적대감을 표현했던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는 성과를 낸 사실이 입증됐다.

이제 북·미 대화의 온기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가 문 대통령의 당면 과제가 됐다. 이방카 트럼프 미 백악관 선임고문의 방한과 대북 특사 파견이 중대한 고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의 접촉이 성사됐다면 사실상 역대 최고위급 북·미 회동 사례가 될 뻔했다. 지금까지 미국 부통령이 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난 전례가 없었고, 김여정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동생이자 특사 자격이었다. 청와대는 펜스·김여정 회동을 성사시키기 위해 외교안보·정보라인을 총동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회동이 불발됐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인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수원칙론자인 펜스 부통령을 내세워 북한을 시험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9일 문 대통령이 주최한 평창 동계올림픽 사전 정상리셉션에 불참하는 등 청와대가 당황할 정도로 강경한 행보를 보였다. 이 같은 펜스 부통령의 행동이 북한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한반도 문제와 남북 대화에 있어서는 우리 정부의 구상에 상당히 이해가 깊고 우호적”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방한하는 이방카가 가져올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주목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미국 내부에서는 강경파와 대화파 간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말 경질이 예상됐던 대표적 대화파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최근 발언 빈도를 높이는 것도 대화파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방증일 수 있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펜스 부통령으로부터 방한 결과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방카를 통해 ‘정리된’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의 조율이 끝나면 다음 카드는 대북 특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사의 가장 큰 임무는 북·미 대화의 단초를 다시 마련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를 위해 북한과 정보·실무라인을 통해 다각도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훈 국정원장의 과거 카운터파트였던 김창선 전 국방위원회 서기실장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등 남북 간 정보라인은 상당부분 복원된 상태다.

김여정의 방남을 통해 남북 최고위급 사이에 일정 정도 신뢰가 구축됐을 가능성이 높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 접견에 이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만찬회동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임 실장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각각 만나 상당히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