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략·전문성 없이 트럼프와 무역전쟁할 수 있겠나

입력 2018-02-21 18:00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정부 대응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중무장한 상대국은 사정없이 칼을 휘둘러대는데 맨몸으로 막아서며 이길 수 있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하는 꼴이다. 미국은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시작한데 이어 지난달 국내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최근에는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관세 53%를 부과하려는 12개 철강 수입국 명단에 우리나라를 포함시켰다. 대미 철강 수출이 가장 많은 캐나다는 물론 대미 무역흑자가 훨씬 많은 일본과 독일, 대만은 모두 빠졌다. 동맹국 중 우리만 중국·러시아와 함께 포함됐다. 그런데도 우리가 왜 포함됐는지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미국과의 외교·통상라인이 가동되고 있기나 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통상 압력이 거세질 것은 예상했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를 “끔찍한 협상”이라며 재협상 의지를 여러 차례 내비쳤고 자동차와 철강 등 러스트벨트를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으로 통상 압박이 확대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악의 경우 한·미 FTA 폐기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정부 대응은 너무 안일하고 낙관적이다. 지난해 한·미 FTA 재협상은 없다고 큰소리치더니 트럼프 대통령의 ‘폐기’ 협박에 협상 테이블로 끌려갔다. 철강 수입규제도 미 상무부가 조사에 나선 뒤 1년 가까이 시간이 있었지만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방관하다가 허를 찔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했다. 안보와 통상을 별개로 대응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냉엄한 국제 현실과 동떨어진다. 미국이 우방국 중 유독 우리나라에 대해서만 무역 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친중 외교나 미온적인 북핵 대응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국제기구에 미국의 횡포를 알리고 다른 나라들과 공조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WTO 제소 결과가 나오는 데 2년 이상 걸리는 데다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은 실리를 찾을 때다. 정보력과 전략, 전문성이 떨어지는 현재의 외교·통상라인으로는 미국의 공세를 막아내기가 버거워 보인다. 아직까지 통상 조직도 정비하지 못했다니 사안의 엄중함을 알고나 있는 건지 의문이다. 여야와 정파를 떠나 최고의 전문가로 조직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대미 통상 네트워크를 총 가동해 정보를 얻어내고 미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