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키드’ 최다빈, 김연아의 길 가다

입력 2018-02-22 05:03
대한민국 국가대표 최다빈이 21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레이백 스핀을 구사하고 있다. 기술점수 37.54점과 예술점수 30.23점을 합산해 67.77점으로 자신의 최고점 기록(65.73점)을 경신했다. 강릉=윤성호 기자
최다빈이 21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공중 2회전 점프를 하고 있다. 이 장면을 연속으로 촬영했다. 강릉=윤성호 기자
키스앤크라이 존에서 점수를 확인한 최다빈과 코치진이 기뻐하는 장면. 강릉=윤성호 기자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등
안정적인 점프 구사로 높은 점수
10일 만에 쇼트 개인 최고점 경신

“하늘에 계신 엄마 생각하며 연기”


최다빈(18)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내면 깊숙이 감춘 마음을 꺼내는 순간은 3분가량의 쇼트프로그램, 4분 안팎의 프리스케이팅을 연기할 때뿐이다. 연기를 끝내면 담담한 표정으로 관객에게 인사한다. 환하게 웃지도, 흐느껴 울지도 않는다. 경기를 마치고 세리머니하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김연아(28)가 그랬다. 금메달리스트가 될 때까지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고 쏟았던 눈물은 그래서 화제였다.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7년 동안 이를 악물고 억눌렀던 수많은 감정이 한순간에 표출된 것이다.

최다빈은 김연아의 강인한 정신력까지 닮고 싶어 하는 ‘연아 키드’다. 최다빈은 ‘김연아 장학금’의 첫 수혜자이기도 하다. 김연아는 시니어무대 데뷔 시즌인 2007년에 피겨 유망주 육성을 위해 1200만원을 기부했다. 당시 김연아는 고교 2학년, 최다빈은 초교 1학년이었다. 최다빈은 그해 1월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김연아로부터 장학금 200만원을 직접 받았다.

그때부터 ‘김연아의 길’을 따라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에 집이 있는 최다빈은 2015년 경기도 군포 수리고로 진학했다. 다음 달에 고려대 입학도 앞두고 있다. 모두 김연아의 모교다.

그리고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은반 위에 처음으로 섰다. 최다빈은 21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67.77점으로 8위에 올랐다. 지난 11일 팀이벤트(단체전)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작성한 개인 최고점(65.73점)을 경신했다. 30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24명에게만 주어지는 프리스케이팅 진출권을 가볍게 확보했다. 메달 색깔을 가리는 프리스케이팅은 오는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최다빈은 영화 ‘엔틀’의 삽입곡 ‘파파 캔 유 히어 미(Papa, can you hear me)’를 배경음악으로 안정적인 점프와 풍부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쇼트프로그램의 첫 과제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를 선택한 최다빈은 10.70점을 받았다. 비슷한 구성으로 출전한 미야하라 사토코(20·일본)가 이 과제를 수행해 받은 11.00점에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미야하라는 4위 성적을 거뒀다.

기술점수 37.54점, 예술점수 30.23점. 최다빈은 연기를 마친 뒤 눈을 질끈 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관객에게 인사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감정 표현을 자제했지만 올림픽 단독 무대 데뷔전인 이날만큼은 달랐다. 오랜 노력과 인고의 시간, 지난해 6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생각났다.

최다빈은 경기를 마치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긴장했지만 잘 마무리해 울컥했다. 엄마를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