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동안 교회를 묵묵히 섬기던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배낭을 둘러메고 훌쩍 길을 나섰다. ‘걷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다. 출발지는 대한민국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명파초등학교, 목적지는 서쪽 끝 경기도 파주 임진각이었다. 지난해 6월 12일 비무장지대(DMZ)를 오른쪽에 두고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340㎞의 여정에 나선 이는 한희철(58·부천 성지감리교회) 목사였다.
그는 최근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꽃자리)라는 제목으로 도보 기도 여정을 담은 책을 펴냈다. 집회 인도차 미국에 체류 중인 한 목사를 21일 이메일로 만났다.
그는 떠난 길에서 원 없이 기도했다고 고백했다.
“기억이 닿는 한 가장 어릴 때로 돌아갔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동네 어른들, 교회학교 선생님과 목사님의 모습이 흑백 영사기가 돌아가듯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걸으며 또 기도했습니다.” 서쪽으로 향하는 매 순간 새로운 기도 대상이 떠올랐다. 지난 목회 여정을 따라 기도했고 맡고 있는 교회 교인들을 한 명씩 떠올리며 기도했다. 분단 조국의 통일도 빼놓을 수 없는 기도 제목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도에 대한 짧은 정의를 내렸다. “기도란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였습니다. 서로를 기억하는 것과 우리가 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바로 기도가 지닌 힘이더군요.”
도보 기도의 여정은 은혜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초여름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50대 후반의 남성이 340㎞를 걷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이 끊기는 건 다반사였고 숙식 장소를 찾지 못해 가슴 졸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집이 잡히고 부르튼 발을 붕대로 감아가며 걷고 또 걸었던 한 목사는 자신을 ‘벌레’에 비유했다.
“창조세계의 한 부분을 걸으면서 마치 한 마리 벌레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하루의 시간을 걷는 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주님께 의지하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였죠. 벌레 같은 나를 이처럼 사랑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했습니다.”
도보 기도의 장점도 소개했다. 평소 새벽기도가 끝나면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그였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게 좋았는데 두 발로 걸으며 하는 기도도 유익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하는 기도, 상쾌한 기도의 방법입니다.”
도보 기도의 맛을 깊이 경험한 한 목사는 청년들과 한강 발원지인 태백 검룡소를 출발해 물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청년들에게 작은 샘이 어떻게 큰 강을 이루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걷는 기도가 얼마나 좋은지 직접 경험하고 나니 추천하고 싶네요.”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DMZ 340㎞, 기도하며 걷고 또 걸었다”
입력 2018-02-2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