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좀 아줌마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좋다고 생각되는 게 있다 싶으면 과할 정도로 주변에 권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발목을 삐끗해 깁스를 한 달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관리를 못해 후유증이 7개월 갔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 말끔히 나은 뒤론, 어찌나 여기저기 소개했던지 ‘또 그 한의원 얘기냐’는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국민일보가 창간 30주년 기념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하고 있다. ‘집안 행사’라 머쓱하지만 너무 좋으니 막 권하고 싶은 심리가 발동한다.
자코메티는 조각 사상 최고의 작품 가격을 기록한 스위스 태생 조각가이자 화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철사처럼 가늘고 앙상한 인간 형상을 탄생시킨 조각가. 그 정도의 미술 상식을 갖고 있던 나는 실물 작품이 아닌 글로 먼저 자코메티를 만났다.
자코메티는 복이 많은 작가였다. 건조한 미술사 책이 아니라 그와 어울리며 동시대를 호흡하고, 모델이 돼주기도 했던 당대 인텔리들이 전기나 에세이를 통해 그의 삶과 예술을 증언했다. ‘자코메티-영혼을 빚어낸 손길’(을유문화사)을 쓴 미국인 제임스 로드가 대표적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군 정보요원으로 복무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유럽의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모델이 된 그는 자코메티가 뱉은 말과 행동을 몰래 수첩에 기록했다. 제작 과정을 매일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에세이 ‘작업실의 자코메티’(눈빛)는 선 몇 개로 쓱 그린 듯한 자코메티의 인물화가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담아낼까 고민하며 지우고 그리기를 무수히 반복한 번민의 산물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역시 모델을 했던 프랑스의 극작가 장 주네도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열화당)를 썼다. 사생아로 태어나 소년원과 감방을 전전하다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그의 작품을 읽은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돼 석방된 인물이다. 글이 준 감동이 오죽하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사탕 아껴먹듯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가며 한 번도 실물을 보지 못한 자코메티의 작품을 마치 다 본듯 착각에 빠졌다. 막상 전시가 개막돼 예술의전당에 간 나는 앗,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미사여구도 실물 조각 앞에서 내가 느꼈던, 촉각의 감동을 설명하지 못했다.
유럽 미술관을 구경할 기회가 꽤 있었다. 걸작을 많이 보긴 했지만, 이상하게 회화에선 깊은 감동을 받지 못했다. 딱 15분 관람시간이 허용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그냥 그랬다. 작품 앞에서 처음 심장이 멎는 느낌을 받은 건 프랑스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본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키스’다. 등신대의 남녀, 그 사랑의 찰나가 뜨거워 차가운 돌덩이에 피가 흐르는 듯했다. 김숨이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의 운동화가 복원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L의 운동화’. 책에 등장하는 복원사가 그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키스’ 작품을 본 감동을 언급하는 대목을 최근 읽고는 감동의 보편성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이번이다. 상징 같은 작품 ‘걸어가는 사람’보다 유작인 ‘로타르 좌상’ 앞에서 더 전율했다. 생애 두 번째로 작품 앞에서 감전되는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이 좌상의 모델인 로타르는 프랑스의 유명 사진작가였다. 마약을 하며 인생의 내리막을 걷게 된 그의 슬픈 눈. 그 시선을 표현하고 싶어 로타르에게 모델을 요청했다고 한다. 내장이 만져지는 것 같은 신체가 주는 고통의 감각에 자리를 뜨기 어려웠다.
자코메티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이다. 막상 우리나라에 오면 귀한 줄 모르는 게 사람 심리다. 길었던 한파,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에 나들이를 자제했을 수 있다. 날이 좋은 날, 자코메티전 관람은 어떨까. 놓치면 아까운, 전시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내일을 열며-손영옥] 놓치면 아까운 자코메티 전시
입력 2018-02-21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