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콘텐츠에 집중… 비주류 플랫폼서 흥행시켜 주류 방송으로의 진출 길 터
‘비밀보장’ ‘셀럽파이브’… 김숙·김생민 등 후배들에 활동 무대 제공해 스타로
25년차 방송인 송은이(45·사진)는 튀는 캐릭터가 아니다. 뚱뚱한 몸, 못생긴 얼굴, ‘센 언니’ 느낌의 강한 성격, 무식함, 혹은 의외로 예쁜 외모 등으로 요약되는 여성 개그맨의 ‘성공 공식’ 어디에도 송은이는 딱 들어맞지 않는다. 뚜렷한 캐릭터 없이 성공하기 힘든 방송가에서 오랫동안 비주류였던 송은이는 지금 가장 핫한 인물로 꼽힌다. 팟캐스트 ‘비밀보장’, 예능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 프로젝트 그룹 ‘셀럽파이브’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다.
송은이가 만들어낸 콘텐츠들은 기존의 예능 방송들이 인기를 모은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비주류 플랫폼에서 소소하게 시작해 대박을 터뜨렸다. 변방에서 크게 히트를 치자 주류 방송에서 ‘모셔가는’ 모양새가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김숙과 함께하는 ‘비밀보장’은 SBS ‘언니네 라디오’로 이어졌고, ‘비밀보장’의 한 코너였던 ‘영수증’은 KBS ‘김생민의 영수증’으로 확장됐다. 김신영 신봉선 김영희 안영미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그룹 ‘셀럽파이브’는 유튜브에서 시작해 MBC ‘쇼 챔피언’ 오프닝 무대 등에 진출하면서 방송에서 걸그룹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송은이의 이런 성공은 방송인으로서보다 제작자로서의 성공으로 해석된다. 한 명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대신 깊이 있는 콘텐츠로 승부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 개그맨이 강한 캐릭터 없이 콘텐츠만으로 성공에 이른 일은 그동안 없었다. 남녀를 통틀어 콘텐츠로 밋밋한 캐릭터를 극복한 이는 유재석 유병재 정도가 꼽힌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비주류 플랫폼에서 시작해 대중적 성공을 거둬 “대중문화의 판을 흔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은이의 성공은 ‘새로운 판을 벌이는 것’에서 시작됐다. 최근 자신의 제작사 ‘컨텐츠랩 비보’에서 만든 웹 예능 제목인 ‘판벌려’는 송은이식 예능의 성공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이 새로운 판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자극적인 결과물에 그치지 않고 고민하는 과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도 색다르다.
송은이가 벌린 판은 방송가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주류 방송에 편입되지 못하거나 그 틀을 벗어나고 싶어 한 연예인들을 팟캐스트나 유튜브 웹예능이라는 새로운 판으로 이끌었다. 송은이는 예전 인터뷰에서 “코미디계가 침체되면서 의기소침해 있는 후배들에게 방송 말고도 코미디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얘길 하곤 한다”고 밝혔다. 주류 방송이 불러주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제작자 송은이가 가진 미덕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 조급해하지 않다보니 넓은 시각으로 방송가 안팎을 관망할 수 있다. 주류 방송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급속도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빨리 읽어내고 즉각 대처하고 있다. 늘 넘치는 아이디어도 한몫한다. 이는 25년 동안 송은이가 연예계에서 버텨온 힘이기도 하다.
송은이의 성공은 ‘송은이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김숙 김생민이 전성기를 맞을 수 있도록 도운 것처럼 송은이는 여러 개그맨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송은이는 올해 ‘안영미와 박지선를 띄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후배들, 특히나 척박한 환경에서 애쓰는 여성 개그맨들에게 선배로서 롤 모델이 돼 주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국 PD는 “셀럽파이브 성공으로 다른 여성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인다. 한동안 주춤했는데 여성 예능에 불을 지피고 있다”고 말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무엇보다 송은이씨가 스토리와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게 신선하다”며 “요즘 시청자들은 예능을 단순히 재미로만 보지 않고 그 맥락을 많이 본다. 그의 성장 스토리가 호감으로 다가가고, 응원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기획자 송은이’ 비주류에서 새 판을 열다
입력 2018-02-2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