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성으로 사는 길… 正道는 없다

입력 2018-02-22 00:01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본 1년’의 저자 레이첼 헬드 에반스가 2010년 11월 집 지붕에 올라 참회하고 있다. 레이첼헬드에반스닷컴 제공
남편을 드높이기 위해 고속도로 입구에서 ‘댄(남편)은 멋지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저자. 레이첼헬드에반스닷컴 제공
나팔절을 맞아 뿔피리를 부는 모습. 레이첼헬드에반스닷컴 제공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의 직업 신분 외모 학력 성격 가정환경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의 삶은 성경에 기록됐다는 그 자체만으로 ‘성경적 여성’의 본보기가 된다. 하지만 성경엔 아버지가 딸을 여종으로 팔아넘기거나(출 21:7) 일부다처제(창 30, 출 21:10)처럼 현대 문명에 반하는 행태도 종종 등장한다. 이쯤 되면 문득 궁금해진다. 성경대로 사는 것이 성경적 여성이 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최근 발간된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본 1년’(비아토르)은 저자의 이 같은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종교자문위원, 파워 블로거인 저자 레이첼 헬드 에반스(37)는 2010년 10월부터 1년간 성경 속 여성의 삶을 그대로 실천한 내용을 엮어 책을 펴냈다.

저자는 복음주의 성향이 강해 소위 ‘바이블 벨트’로 불리는 미국 테네시주 데이턴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이런 배경에서 기독교계 대학을 나온 그는 “복음주의는 종교적 모국어”라 말할 정도로 기독교 문화에 익숙하다.

그런 그이지만 교회나 주변 기독교인이 말하는 ‘기독교인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긴 힘들었다. 수천 년 동안 여러 문화를 거쳐 완성된 성경이 모든 여성 그리스도인에게 들어맞는 ‘성경적 여성’ 공식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경적 여성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1년간 성경대로 살아보기로 작정한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 딸 과부 아내 첩 왕비 여선지자 창녀 등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관련 구절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다. 여기엔 보수주의 자유주의 등 여러 관점의 성경주석과 가톨릭, 유대교 자료도 포함됐다. 정통 유대교인, 아미시 여성, 일부다처주의자 등 성경대로 살고 있는 이들을 찾아 만나기도 한다.

그는 성경 말씀에 기초해 2가지 지침을 만드는데 하나는 ‘성경적 여성의 십계명’이며 다른 하나는 ‘매월 실천 덕목 12가지’다. 전자는 ‘남편의 뜻에 순종하라(창 3:16, 벧전 3:1 등)’ ‘집안일에 충성하라(딤전 5:14 등)’ ‘머리칼을 자르지 말라(고전 11:15)’ ‘남자에 대해 권위를 가지지 말라(딤전 2:12)’ 등이 담겼다.

후자에는 온유 살림 순종 용맹 정숙 순결 출산 복종 정의 침묵 은혜가 포함됐다. 각 항목엔 3∼6가지의 구체적 실천항목이 있다. 순종이 덕목인 달에는 남편을 주인님이라 부르고(벧전 3:6), 일부다처주의자를 인터뷰하며, 가부장제 등으로 희생된 여성을 기리는 행사를 여는 식이다(삿 11:39∼40, 삿 19:25, 창 21:14∼16).

책엔 이 지침대로 살다 한계에 부닥치는 저자의 우스꽝스런 경험이 가득하다. 지붕에 올라가 속죄하는 그를 바라보는 행인에게 “괜찮아요. 저는 작가예요”라고 외쳐야 했으며 성문에서 남편을 찬양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하기 위해 고속도로 입구에서 ‘댄(남편)은 멋지다’는 팻말을 들었다. 정숙한 차림을 위해 화장기 없는 얼굴에 모자를 쓴 뒤 목까지 올라오는 상의와 발목 길이의 원피스를 입어 동네에서 근본주의 종교인 취급을 당한다. 나팔절엔 베란다에서 여리고인이 도망갈 법한 소리를 내는 뿔피리를 불기도 한다.

성경이 현대 생활양식과 맞지 않는 점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윤리적 소비, 남편 존중, 여권 신장 등 성경대로 살며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된 내용은 나중에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1년간의 실험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믿음의 여성이 되는 단 하나의 정도(正道)는 없다.” 나아가 이 시대 성경적 여성이 예수님의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정체성을 찾길 소망한다. “예수님은 성경을 두 계명으로 정리한다.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그분이 정의한 ‘성경적’의 의미가 사랑이라면, 나도 그렇게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