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빠졌지만… 은반에 울린 ‘홀로 아리랑’

입력 2018-02-21 05:05
대한민국 아이스댄스 대표 민유라(왼쪽)와 알렉산더 겜린이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 댄스 경기에서 한복을 입고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고 있다. 강릉=김지훈 기자

민유라-겜린 조, 프리 댄스곡 선정

개량 한복 차려 입고 혼신의 연기
경기 중엔 ‘아리랑’ 따라 불러
관객들 우레와 같은 함성 쏟아내


20일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 댄스 경기가 열린 강원도 강릉아이스아레나. 연분홍 저고리에 보라색 치마의 개량 한복을 입은 민유라(23)와 흰색 저고리와 하늘색 조끼에 짙은 남색 하의를 착용한 알렉산더 겜린(25)이 4번째로 모습을 드러냈다.

민유라와 겜린이 자세를 잡자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아이스링크 위를 지켜봤다. 곧 이어 ‘홀로 아리랑’ 선율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겜린이 제자리에서 민유라를 들어 올리는 스테이셔너리 리프트로 연기는 시작됐다. 두 선수는 원형으로 이동하는 서큘러 스텝 시퀀스, 콤비네이션 스핀 등을 무난하게 선보였다. 민유라는 경기 중에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코레오그래픽 댄스리프트까지 9가지 과제를 모두 선보인 두 선수가 바닥에 앉아 손을 들어 올리자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피겨 여왕’ 김연아도 경기장을 찾아 이들의 무대를 지켜봤다.

민유라-겜린은 이날 프리댄스에서 기술점수(TES) 44.61점, 예술점수(PCS) 41.91점을 합쳐 86.52점을 받았다. 지난달 국제빙상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기록한 시즌 최고점수(91.27점)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들은 쇼트 댄스와 프리 댄스를 합쳐 147.74점으로 전체 1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올림픽 무대에서 아리랑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무대를 연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경기 후 두 선수는 밝은 표정으로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나타났다. 민유라는 “완벽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올림픽까지 와서 아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태극마크의 의미를 묻자 “한국인으로서 자부심(Korean Pride)”이라며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엄마가 항상 ‘넌 한국 사람이고 한국말과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이라고 말했다.

두 선수는 올림픽에서 ‘아리랑’을 공연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코치들은 외국 심판에게 익숙치 않다며 만류했다. ‘독도’ 가사 문제도 불거졌다. 그래도 민유라와 겜린은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가사를 뺀 채 아리랑을 틀고 연기에 나섰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재미교포 2세 민유라와 올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겜린. 두 명의 ‘이방인’ 국가대표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아이스댄스로 올랐고, 아리랑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릉=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