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상담서비스 나섰지만
조직위가 ‘성폭력’ 표현 반대
결국 영문으로 모호하게 지어
혼란 초래하고 인지도 낮춰
의아하다고 했다. 도무지 뭘 하는 곳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캐나다 대표팀의 스태프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제니퍼 코틴(36)씨는 20일 강원도 강릉 올림픽파크 종합운동장 C게이트 옆에 마련된 사무실 앞에 서있었다. “성평등지원센터? 이게 뭐죠.” 코틴씨 손이 가리키는 곳에 ‘Gender Equality Support Centre’라고 적힌 파란색 간판이 있었다. 바로 위에는 ‘성폭력상담소’라는 한글 문구가 자리했다(사진).
코틴씨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이름만 봐서는 그런 곳인 줄 전혀 모르겠다”며 “여성 선수 비율 등 성차별 이슈를 논의하는 곳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에선 기존 올림픽에서 볼 수 없었던 성폭력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강원도는 주요 경기장 4곳에 사무실을 마련해 올림픽과 패럴림픽대회 기간에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림픽 때마다 논란을 일으키는 성범죄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나 코치진은 이런 곳이 있는지 잘 모르는 형편이다. 영문 이름에서 ‘성폭력’이란 표현이 빠졌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원래 ‘성폭력상담센터’라는 한글 이름을 그대로 영어로 번역할 생각이었다. 강원도 관계자는 “처음 센터를 제안한 ‘여성긴급전화’ 측이나 강원도에서 다른 문구를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성폭력’이라는 단어는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제동을 걸면서 지워졌다. 조직위 측은 “성폭력이라고 못 박아버리면 올림픽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고 봤다. 마치 올림픽에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비춰질까 걱정됐다”고 설명했다.
조직위 생각과 달리 애매모호한 이름은 혼란만 불러왔다. 상담센터 직원들은 “낮은 인지도 탓에 외국인 상담자를 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네덜란드 대표팀 스태프 호세 얀슨(49)씨는 “내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당사자라면 이 간판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것 같다”고 꼬집었다. 미국에서 경기를 보러 왔다는 제이슨 스미스(31)씨도 “성폭력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상담센터의 한 관계자는 “한국인 상담자의 경우 센터를 통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많다”며 “올림픽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기 보다는 피해자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우선했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강릉=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굿모닝! 수호랑] ‘성폭력상담소’ 영문명이 ‘성평등지원센터’?
입력 2018-02-2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