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체부, 성폭력 실태 철저히 밝히고 보완책 마련해야

입력 2018-02-20 17:22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실태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곧 조사를 시작한다. 정부가 특정 분야의 성폭력 상황 전반을 점검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가 저지른 상습적인 성폭력 피해자들의 잇따른 폭로로 촉발된 문화예술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파문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연극계는 물론 뮤지컬 음악감독, 공연 제작사 대표, 유명 배우 겸 교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인간문화재의 성폭력 사례 등 이 분야에 만연된 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론에 정부가 뒤늦게나마 대응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양상이 심각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5년 10월 SNS에 ‘문화계 내 성폭력 고발’ 움직임이 본격화된 데 이어 지난해 초 관련 간담회가 열려 피해사례 수집 등의 조치가 취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실행되지 않다가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자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정부는 우선 각계의 피해사례를 모은 다음 사실 관계를 정확히 가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겠다.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피해자 권리구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검증되기 전 가해혐의자에 대한 무차별 질타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금지조항을 의무적으로 담거나 예술인복지법에 성평등 교육의무화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계는 표현의 자유와 창의적 발상이 비교적 광범위하게 용인된다는 점에서 성범죄 의식에 둔감하기 쉽다. 더욱이 특정한 문화 권력이 지배하는 풍토에서 은밀히 저질러지는 성폭력은 어지간해서 노출되지 않는다. 사회각계의 지지와 성원, 정부의 지대한 관심만이 이를 근절시킬 수 있다. 성폭력의 상흔을 지닌 여성예술인이 상존하는 환경에서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문화예술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정부는 모든 역량을 기울여 철저히 조사하고 보완책을 강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