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조윤석] 누구를 위한 기후변화 대책인가

입력 2018-02-20 17:21

지난 2월 15일자 영국 인디펜던트지 인터넷 판에는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크게 영향이 미칠 만한 역사적 사건이 소개됐다. 러시아 지질학자이자 탐험가인 바론 에두아르드의 이름을 딴 유조선 한 척이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출발해 북부 러시아 사베타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까지 쇄빙선 없이 항해에 성공했다. 오랫동안 ‘꿈의 항로’라 불려왔던 북극항로를 겨울철에 쇄빙선 없이 단독으로 항해한 최초의 상업용 선박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럽까지 기존 남방항로로는 24일이 걸렸던 것에 비해 이 북극항로가 열린다면 운행 시간이 10일이나 단축된 14일이면 가능하고, 이동경로가 2만1000㎞에서 1만2700㎞로 8300㎞ 이상 짧아져서 경제성 또한 매우 클 것으로 평가돼 해운업계에서는 반색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2020년 이후로 예상하고 있던 겨울철 북극항로 항해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 면적의 축소로 2년 이상이나 앞당겨졌음이 확인된 사건이다. 전 세계의 해빙 범위를 추적하는 미국 국립빙하연구소(NSIDC)에 따르면 올 1월 북극 해빙기록은 지금까지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나아가 북극권 영토를 가진 8개국 과학정책그룹인 북극위원회는 지난 30년 동안 여름 얼음의 면적은 절반으로 줄었고 양은 4분의 3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녹아버린 얼음은 무역 증대와 해운회사의 새로운 기회가 되겠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사라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북극에서 얼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북극의 얼음이 중요한 것은 지구에 도달한 태양열을 반사해 열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아 바닷물이 되면 태양열을 흡수해 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북극의 얼음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끼친다.

북극이 녹아버리면 이런 일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 해수면 상승으로 섬나라와 부산 뉴욕 상하이 시드니 베니스 등 해안 도시의 상당한 면적이 바닷속에 잠긴다. 둘째, 북극빙하 아래 잠자는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보온능력이 20배나 더 커 온난화를 가속한다. 셋째, 대서양 북쪽으로 흘러 들어가서 미 대륙 동부와 유럽에 따뜻한 기운을 전달해주던 멕시코만류가 멈출 가능성이 있고 이 지역에는 빙하기에 가까운 혹독한 추위가 닥칠 수도 있다. 이는 농업 생산량을 급격히 감소시킬 것이다. 넷째, 북극의 차가운 공기를 담고 있는 제트기류를 약화시켜 극단적인 기상이변을 가져온다. 세계의 바람은 부분적으로 북극과 열대 지방의 온도 차이로 유발된다. 이 온도차가 줄어들면 풍속이 느려져 북극 제트기류의 흐름을 방해하고 극단적인 날씨로 이어질 수 있다. 다섯째, 북극이 녹을 정도면 당연히 히말라야 빙하도 녹는다. 히말라야 빙하는 갠지스강, 인더스강을 비롯해 네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으로 흘러가는 수많은 하천의 발원지다. 이 하천들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구만 13억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말라야 빙하가 사라지고 물줄기가 마른다면 이 지역 주민들은 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며칠 전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이렇게 기후변화가 심각하니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우리 아이들에게는 덜 괴로운 세상을 물려주자”고 했더니 “누구 좋으라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나는 뭔가 날카로운 것에 찔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가 솔직한 이야기를 해준 것에 감사했다. 평생 불안정한 일자리에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고 정말 운 좋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친구들에게 다음 세대,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자식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해보자고 혹은 하라고 한 것이 얼마나 큰 실례인가. 나는 완전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