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진석] 올림픽과 동북아 지정학

입력 2018-02-20 18:13

평창올림픽이 종반에 이르렀다.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걸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흐뭇할 따름이다.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도 같은 마음일까. 모르긴 몰라도 속내는 복잡할 것임에 틀림없다. 러시아는 이번 올림픽에 자국 이름으로 참가하지 못하는 형편이고, 일본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이해관계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및 북핵 문제에 대해 나름 목소리를 내고 싶겠으나 무대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어 보인다.

결국 남북한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국은 미국과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전 지구적 평화의 축제에 재를 뿌릴 수는 없어 한·미 군사훈련도 연기했으나 시종일관 대북 압박 공세를 취하고 있고, 과거 통미봉남하던 북한이 이제는 봉미통남하는 자세가 달갑지만은 않아 보인다. 더욱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김여정을 필두로 한 북한 대표단 때문에 주목을 끌지 못했다. 중국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로 한반도 평화 무드가 조성된 듯한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보이고 있으나 과거처럼 북한 정권이 중국 말에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은 형국이다. 미·중 모두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에만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도록 압박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으며 여전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 정권을 위협할 정도의 지나친 압박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미·중 간 현안이 비단 한반도나 북핵 문제뿐이랴. 양국은 대만 독립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지금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듯 보이지만 아·태지역 경제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각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 중이다. 또한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동남아 국가 간 영토 분쟁 이슈에 대해서도 미국이 필리핀 등 동맹국을 지원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힘의 외교를 추진하면서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까지 아·태지역에서 패권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미·중 간 정치적·경제적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집권 2기를 맞아 내달에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사인 양회를 앞두고 있고, 미래 비전으로 ‘중국몽’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몽은 소득 불균형, 환경 파괴 등 급속한 성장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을 통해 2050년까지 중국의 국가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즉 2050년까지 대내적으로 경제·복지·환경 강국, 대외적으로 국제사회를 이끄는 선도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성장과 혁신을 통한 ‘부강 국가’, 소득 불균형 문제를 해결한 ‘복지 강국’,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한 ‘녹색 중국’,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등한 선도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무엇보다 한반도 안정과 이 지역에서 자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확보가 중요하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는 어느 연예인 말대로 올림픽은 올림픽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올림픽 정신은 어떠한 정치적 색채나 선전 선동을 배제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국제정치 환경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멀리는 나치 치하에서 열렸던 베를린올림픽이 그랬고, 패전 후 일본의 부활을 전 세계에 과시한 도쿄올림픽, 테러로 얼룩졌던 뮌헨올림픽, 냉전의 산물로 반쪽 올림픽으로 전락한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모스크바올림픽이 그러했다.

선수촌에 걸린 인공기 문제로 예민할 필요도 없고, 북한 예술단 공연을 보고 지나치게 감동할 필요도 없다.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자는 얘기다. 주변 4강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길 것이다. 이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핵 문제가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 정세가 풀릴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해본다.

유진석 동북아미래연구소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