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집한 두 ‘이방인’, 은반 위 ‘아리랑’ 펼친다

입력 2018-02-20 05:02
민유라와 알렉산더 겜린이 19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쇼트댄스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이날 16위를 차지하며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프리댄스에 진출했다. 강릉=윤성호 기자

민유라-겜린 조, 韓 사상 첫 프리댄스 진출

재미동포 2세 민유라
지난해 美서 귀화한 겜린
한국 문화 세계에 알리려
‘아리랑’에 맞춰 안무 구성


올림픽 은반 위에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지난 9일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공동입장을 할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경기장에선 처음이다. 아리랑을 세계에 선보일 주인공은 민유라(23)와 알렉산더 겜린(25)이다.

민유라-겜린 조는 19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쇼트 댄스에서 61.22점을 받았다. 24개 팀 가운데 16위를 차지했다. 민유라-겜린 조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프리 댄스에 진출했다. 쇼트 댄스에서 20위 안에 들면 프리 댄스로 넘어갈 수 있다.

민유라는 쇼트 댄스를 마치고 키스앤크라이존에서 눈물을 쏟았다. 유쾌한 모습만 보였던 민유라도 이 순간만은 감격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그는 “아리랑을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프리 댄스는 20일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메달의 주인이 가려지는 결승전 성격의 경기다.

민유라와 겜린은 이미 메달만큼 값진 목표를 달성했다. 그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아리랑의 선율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가수 소향의 ‘홀로아리랑’에 맞춰 프리 댄스 안무를 구성했고, 의상도 개량 한복을 선택했다.

‘홀로아리랑’은 구전민요나 대중가요로 재해석된 여러 가지 아리랑 가운데 독도를 주제로 한 곡이다. 민유라와 겜린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정치색 논란’이 불거지자 독도를 언급한 특정 부분의 가사를 빼고 사용키로 했다.

피겨스케이팅은 발레를 기반으로 예술과 스포츠를 결합한 종목이다. 아리랑과 같은 동양음악은 미국과 유럽계가 대부분인 심판진에 낯설 수밖에 없다.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민유라-겜린 조가 아리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반대 의견도 있었다. 더욱이 어린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민유라와 겜린이 아리랑에 담긴 정서를 제대로 해석해 표현할지도 ‘물음표’였다. 민유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재미동포 2세이고, 겜린은 지난해 7월 법무부 특별허가를 받아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했다.

가능성도 입증됐다. 민유라-겜린 조는 지난해 9월 독일 네벨혼 트로피 프리 댄스에서 88.86점을 받았다. 쇼트 댄스(55.94점)와 합산한 최종 점수는 144.80점으로 4위에 올랐다. 메달권 문턱까지 진입한 성적이었다.

아리랑 가락이 피겨스케이팅에 사용된 적은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28)는 2011-2012 시즌 때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아리랑을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를 채택했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장에서 아리랑이 연주된 적은 없었다. 민유라-겜린 조는 아리랑을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에 사용하는 주인공이 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