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잡는 ‘태움 문화’를 태워라

입력 2018-02-20 05:05

靑 게시판 청원 서명 봇물

靑 게시판 청원 서명 봇물
선배 괴롭힘에 신입 극단적 선택
관행화된 악습에 출발부터 눈물
네티즌 태움 금지·처벌 한목소리
큰 병원 고질적 인력부족서 시작
악행 대물림 도제식 교육 바꿔야


간호사 특유의 ‘태움’(선배의 괴롭힘) 관행 때문에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입사 6개월도 안 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간호사 근무 환경과 교육 방식 전반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간호사의 눈물을 닦아 달라”며 태움 처벌과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님 간호사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청원글에는 1만1740명이 서명했다. 글 게시자는 “중환자실은 늘 인력이 부족하다”며 “중환자실은 (올림픽) 금메달만큼 귀하고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곳이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신규 간호사에게 오랜 경력의 간호사와 똑같은 수의 환자를 담당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15일 숨진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의 상태가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곳이지만 대형병원에서도 간호사 1명이 환자 2∼3명을 돌보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은 간호사 1명에 환자 1명을 배정한다.

간호사의 태움 문화는 고질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해 신규 간호사를 제대로 된 교육기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 많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정책기획실장은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충분한 교육이 되지 않은 신규 간호사를 현장에 투입하게 된다”며 “현장에서는 신규 간호사가 한 사람 몫을 빨리 해주길 원하니까 가르치는 선배도 힘들고 배우는 후배도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의 다른 게시자는 “간호사가 돌보는 환자 수가 너무 많고, 병원의 하루 일과도 제대로 치러내기 힘든 와중에 초과근무를 견뎌내면서 다른 간호사를 가르치는 일은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시키고도 남을 만큼 고되다”고 밝혔다.

태움까지 불러오는 혹독한 도제식 교육은 이론과 현장의 차이 때문이다. 간호학과에서도 현장실습을 하지만 병원마다 진료 시스템이 다르고 현장 대처 방법에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취업 후 실제로 업무에 투입되면 선임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백찬기 대한간호협회 홍보국장은 “이론과 현장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신규 간호사 입장에서는 프리셉터(사수)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송미숙 아주대 간호학과 교수도 “의사는 국가고시에서 임상술기 시험을 치르지만 간호사는 그런 게 없다”며 “실습교육 강화도 태움 문화를 없앨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나 실장은 “병원 내에서 수습기간을 3개월, 6개월 등으로 명시한 뒤 정규 인력으로 투입하지 않고 배우는 기간으로만 해야 한다”며 “정부가 간호사 교육에 따른 인건비나 신규 인력 훈련을 위한 별도 수가를 지급한다면 병원의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