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팀워크·끈기… ‘컬링 DNA’ 타고난 女대표팀

입력 2018-02-20 05:05
한국 대표팀이 19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6차전에서 승리한 뒤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스킵 김은정(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해 모두 김씨로 구성된 여자 대표팀은 ‘팀 킴(Team Kim)’으로도 불린다. 강릉=김지훈 기자

올림픽 도전 두번 만에 4강 눈앞

무패 스웨덴마저 꺾고 공동선두
마늘소녀들 매운맛에 세계가 깜짝
도장깨기 하듯 강호 잇따라 격파

10년 넘게 한솥밥… 팀워크 최강
12년 전 뿌린 씨앗 평창서 결실

김경두 훈련원장이 숨은 히어로
의성에 국내 첫 전용경기장 건립


의성 ‘마늘소녀들’의 매운맛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번엔 무패 행진을 벌이던 스웨덴에 첫 패배를 안기며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한국 컬링 여자 대표팀의 매운맛은 하루아침에, 그리고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2년 전 이미 경북 의성에 매운맛의 씨가 뿌려졌고, 평창에서 결실을 거두게 됐다.

한국은 19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예선 6차전에서 7대 6으로 이겼다. 예선 전적 5승 1패를 기록한 한국은 스웨덴과 공동 1위가 됐다. 4강 진출에도 성큼 다가갔다.

세계 랭킹 8위인 한국이 1위 캐나다와 2위 스위스, 4위 영국, 10위 중국 등 강호들을 잇따라 제압하자 외신들도 놀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한국 여자 대표팀이 평창올림픽의 깜짝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며 “한국인들은 최근까지 컬링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여자 대표팀은 연습 공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컬링 여자 대표팀의 승승장구를 무협지 등에 나오는 ‘도장깨기(무술 도장에서 유명한 강자들을 꺾는 것)’에 빗대고 있다.

한국 여자 컬링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처음 올림픽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역사가 짧다. 당시 경기도청 소속 선수들이 기록한 성적은 3승 6패로 10개국 중 8위였다. 평창올림픽에선 경북체육회 선수들이 나서서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하고 있다. 스킵 김은정과 리드 김영미, 세컨드 김선영, 서드 김경애, 후보 김초희로 이뤄진 여자 대표팀 ‘팀 킴(Team Kim)’은 10년 넘게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있다. 김영미와 김경애는 친자매다. 이들은 심리 훈련까지 받으며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악성 댓글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선수촌에서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김민정 감독은 스웨덴전이 끝난 뒤 “상대가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며 “우리는 상대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는 정신력 훈련을 해 왔다. 그 부분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강조했다.

여자 대표팀의 선전 뒤엔 한 명의 ‘히든 히어로’가 있다. 바로 한국 컬링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으로 여자 대표팀 김민정 감독의 아버지다. 그는 컬링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반 컬링을 한국에 보급한 주인공이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 김 원장은 부산 동아대 대학원 시절부터 컬링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전용 연습장을 세우기 위해 고향인 의성에 있는 자신의 땅을 기증하겠다는 문서를 써서 경북도청과 의성군을 찾아갔다. 그의 노력 덕분에 경북도가 11억원, 경북컬링협회가 16억원, 의성군이 부지와 3억5000만원을 지원해 2006년 국내 최초 컬링 전용 경기장인 경북컬링훈련원이 건립됐다. 바로 이곳에서 ‘팀 킴’이 자랐다. 김 원장과 딸 김 감독의 열정은 팀 킴의 조직력을 극대화시킨 요인이었다.

강릉=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