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의 힘찬 필세냐, 형광색 꽃들의 반격이냐.
서울 화랑가에 모처럼 한국화의 향연이 펼쳐졌다. 각각 수묵과 채색의 전시인데, 모두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빛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통을 현대화한 두 전시를 소개한다.
우선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에서 마련한 원로 작가 박대성(73)의 개인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수묵화의 스케일과 힘찬 붓질의 기운에 놀라게 된다.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다’는 제목에서 보듯 고루하지 않다. 대상을 재해석함으로써 모던한 감각을 뽐낸다. 금강산을 그린 ‘천지인’을 보라. 깎아지른 기암괴석은 드론의 시각으로 그린 듯,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아득한 느낌을 준다. 먹을 쌓고 또 쌓아 밤의 절벽처럼 검어져 아득한 느낌은 강화된다.
경북 경주에서 20년째 터를 잡고 사는 박 작가는 화단에서는 독학으로 대성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중국 옛 화보인 ‘개자원화전’을 보며 그림을 익혔던 그는 21세 때 동아대학교 국제미술대전에 입선하며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각종 대회를 휩쓸며 화단의 뿌리 깊은 학맥을 이겨냈다. 전통 회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대만이든, 중국이든 어디든 갔던 그는 1999년 추상 미술의 심장인 미국 뉴욕 소호에서 1년간 거주한다. “어느 날 필묵도 모르는 이들과 여기 왜 있냐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당장 보따리 싸들고 한국으로 돌아왔지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전한 일화다. 뉴욕 체류 경험은 그의 수묵화에 추상성이 가미된 계기가 됐지만, 그러면서도 동양성에 새삼 주목하며 서예 정신을 결합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오는 3월 4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월드타워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는 위 전시와 대척점에 선 듯한 전시를 볼 수 있다. 홍지윤(48) 작가의 개인전 ‘별빛, 달빛, 눈빛’이다. 전시장 가득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있다. 매화 국화 작약 장미…. 전통의 화조화를 연상시키는 소재다.
여성적인 소재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런 소재를 일부러 택했다는 점에서 작가적 태도는 저항적이다.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인 홍 작가는 88학번이다. 그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한국화단은 산수가 대세였고 수묵이 중심이었다”면서 “저는 일부러 전통적으로 산수화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던 화조화에서 소재를 찾았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채색화는 왜색이라 해서 수묵에 비해 홀대 받았던 화단의 풍조가 그때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다. 반항하듯 검은 먹 바탕에 전통 안료를 써서 흰색 혹은 붉은색 장미를 둥둥 띄우듯이 그렸던 홍 작가는 거듭 변신을 시도했다. 전통 안료 대신 노란색 아크릴 물감을 써서 노란 국화를 그린 것이다. 혁신과 실험은 점점 과감해졌다. 장지 대신 캔버스를 쓰기도 하고, 아크릴 물감은 물론 형광색을 써서 발광하는 듯, 강렬한 꽃의 색감을 냈다. 꽃은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색동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오는 25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수묵 vs 채색, 방식은 달라도… ‘전통의 현대화’ 두 전시
입력 2018-02-20 0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