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호사들 스스로 ‘태움 문화’ 근절에 적극 나서야

입력 2018-02-19 18:10
설 전날 발생한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 자살 사건이 간호사들의 악습인 직장 내 괴롭힘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이 간호사의 남자친구는 병원에서 선배·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이 있었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병원 측은 자체 조사 결과 괴롭힘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간호사가 목숨을 끊은 이유는 경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야겠지만 이와 별개로 이번 사건을 간호사들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태움’ 문화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태움은 ‘갈구다못해 영혼까지 불태운다’는 뜻으로 간호사들이 사용하는 은어다.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폭언, 따돌림, 폭행 등을 일삼으며 괴롭히는 걸 일컫는다고 한다. 2005년과 2006년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2명이 자살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지만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 관련 기사에 간호사들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를 고발하는 댓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걸 보면 이런 관행이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들 사이에 이런 악습이 남아있다는 건 충격이다.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기 때문에 엄격한 교육이 불가피하다고 합리화하기도 하지만 이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간호사들의 스트레스와 불만을 가중시켜 간호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이 33.9%나 된다고 하는데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난해 몇몇 대학병원 교수들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폭행 사건에서 드러났듯 의료계의 직장 내 괴롭힘은 간호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대를 혹독한 교육방식의 하나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그런 교육 방식은 명백히 인권침해이며 범죄다. 의료계는 악습을 털어내고 올바른 직장문화를 만들어가는 자정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악습을 대물림하는 원인이 되는만큼 가해자를 엄벌하고 해당 의료기관에도 관리 책임을 더 무겁게 물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의료인력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지적도 있으니 보건 당국은 의료 환경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