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성 어거스틴이다. 그가 있었기에 고대 말과 중세 초기, 로마 제국 혼란기의 기독교가 존립할 수 있었다. 어거스틴 없는 교회사는 어떨까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비록 길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긴 했지만, 신학은 물론이고 정치 철학 문화 등 전방위 영역에서 그가 일군 성취와 쌓은 성채는 아름답고 웅장하다.
그런 그가 처음부터 기독교인이었던 건 아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어린 기도에도 불구하고 성공에 대한 열망과 성적 욕망으로 기독교 신앙을 거부했다. 19세에 지금은 망실된 책, 진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촉구한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불멸의 지혜를 추구하려는 욕구를 품는다. 하여 그는 어머니가 바라던 대로 성경을 읽어보지만 수사학적으로 시시하다 여기고 곧장 덮어버린다.
그리고 이내 마니교로 귀의한다. 평생 씨름했던 악과 고통, 과학과 합리성에 관한 정답을 준다고 믿었던 마니교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그는 그곳을 떠난다. 마니교의 최고 지성 밀레비스의 파우스트와의 면담 때문이다. 마니교 감독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고작 몇 권의 책을 읽고도 타고난 입담으로 지적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잠깐의 대화로도 파우스트에게 실망한 어거스틴은 마니교를 완전히, 영원히 떠난다.
어거스틴이 무식한 파우스트와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니교를 떠나 기독교로 돌아오게 해 준 이는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였다. 그의 설교를 듣고 어거스틴은 “기독교 신앙은 합리적 근거하에서 옹호될 수 있다고 보게 되었다. 기독교 신앙은 합리적이다. 세상을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지적 체계다. 이 같은 확신으로 그는 예비 신자가 됐다.
그 한 문장을 잊지 못한다. 요하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읽던 대학생 시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과해 고대 후기의 혼란을 지난 다음 중세철학 초입에서 어거스틴을 만났다. 저자는 어거스틴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서양의 아버지’. 기독교만의 교부가 아니다, 어거스틴은. 그에게 기독교란 결코 작지 않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우리는 어떤가. 기독교와 학문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목회자와 교인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학문이라는 딱딱한 논리 체계에 욱여넣을 수 없고, 그런 사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성과 독특함을 지닌다는 튼튼한 사유의 결론이 아니라 무지와 게으름이 빚어낸 부끄럽고 볼썽사나운 변명일 뿐이다.
니체와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읽었을까. 논어와 도덕경은 보았을까. 게으르니 공부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니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싫고 무서운 게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은 것이 한 치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지성은 창조하지 않은 양, 너른 신앙의 영토에서 내몰고 만다. 해서, 어거스틴의 싹수가 보이는 젊은 기독 지성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배회하고 있다.
궁색하나마 그들을 향한 최고의 답변은 블레이즈 파스칼의 말이다. “철학을 조롱하는 것이 진정으로 철학하는 길이다.” 파스칼 같은 위대한 철학자요 천재적 수학자, 하나님께 자신의 존재 전부를 내걸었던 신앙인의 말이니까 틀리지 않다. 그래서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하는 것들은 쓰레기라고? 저 위대한 말에 대한 최고의 해석은 뛰어난 철학자인 요하네스 힐쉬베르거의 것이다. “저 말은 파스칼처럼 고민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는 어거스틴처럼 고민하는 지성과 청년이 많다. 안타깝게도 파우스트 같은 목회자, 기성 신자 또한 적지 않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파우스트는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무지했을지언정 차라리 겸손했다. 우리는 너무 용감하다. 교부 어거스틴을 만든 건 기독교는 지성적이며 학문적이라는 믿음이었다.
곧 유학 떠난다며 기도 부탁하는 청소년에게 그 따위 공부해서 뭐하냐고 등짝을 내리치는 청소년 집회 강사가, 학문과 지성을 경시하는 한국교회가 미래의 어거스틴을 영영 쫓아낸 것은 아닐까. 로고스인 하나님은 종말의 날에 누구 등짝을 후려갈길까.
김기현(로고스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어거스틴을 쫓아내는 교회 1
입력 2018-02-2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