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배병우] 만만한 게 한국인가

입력 2018-02-19 18:12 수정 2018-02-19 21:3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에는 북한 핵과 중동 등 대외정책 이슈에 관한 글이 종종 오른다. 그러나 그가 이들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전력투구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오는 11월의 중간선거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관심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다. 과거 미국 대통령에게도 중간선거는 중요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단지 ‘중요하다’는 형용사로는 부족하다. 이번 선거에 사실상 트럼프 자신과 그의 행정부의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 상·하원의 다수당은 공화당이다. 예측대로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양원 중 하나를 장악하면(현재로서는 하원 장악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주창해온 보수 색채의 정책 의제는 일제히 급제동이 걸릴 것이다. 반이민, 오바마케어 폐지 등 논란이 되는 모든 법안이 민주당의 비토로 사망선고를 받는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 측의 지난 대선 당시 러시아 커넥션에 관한 조사도 탄력을 받을 게 뻔하다.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 그의 일족은 물론 최측근들이 반역 혐의로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사법방해 혐의 등으로 트럼프 자신에 대한 탄핵 절차에 시동이 걸릴 수 있다. 행정부와 양원을 장악한 호기를 이용해 사법부 주요 판사 등을 보수파로 물갈이하려던 공화당의 계획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지지율이 30%대에 불과한 트럼프에게 중간선거 패배는 악몽이나 다름없다.

역대 대통령과 다른 ‘독특한’ 행보를 해 온 트럼프는 정치 위기 해결책도 특별하다. 대외정책까지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미국 우선주의’를 통한 외교적 성과(특히 돈과 일자리와 관련된 문제)를 보여주는 데 올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 ‘보여주기’의 주된 타깃이 한국이 될 징후가 농후하다는 점이다. 소위 ‘공정한 무역’의 시범 케이스로 거론하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얘기는 잠잠해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동네북이 됐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경제 규모와 미국 인접국이라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해 한·미 FTA로 공격 대상을 바꿨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트럼프가 12일(현지시간) 언급한 “소위 동맹국이지만 무역에 관해선 동맹국이 아닌” 나라는 한국과 일본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의 무역 흑자는 한국의 3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실제 미국의 수입규제 등 무역보복 조치는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그는 13일 상·하원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과 매우, 매우 나쁜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며 유독 한국을 공격했다.

16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조사에서 5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국가에 캐나다 독일 일본 등 우방들을 제외했지만 한국은 포함시켰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중국은 전면적 무역전쟁 우려 때문에 함부로 못하고, 일본은 100% 미국의 뜻에 순종하기에 특별 대우한다. 한국만 희생양 삼아 연일 두들겨 패고 있다”고 한다.

통상문제만이 아니다. 내달부터 시작되는 10차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도 큰 진통을 겪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주둔비용 100% 분담을 요구한 바 있고 그 액수는 2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구입비용 1조원을 따로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산 무기 구입비로 연 6조∼7조원을 쓰는데 또 이러한 고액 청구서가 날아오면 ‘이게 무슨 동맹이냐, 용병이지’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선을 넘는 과도한 요구에는 폐기까지 상정해야 한다. 국민들도 피로 맺어졌다는 한·미동맹이 금전적 계약관계로 변질되는 변곡점에 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배병우 편집국 부국장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