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여제’ 이상화 끝없는 도전… “최선 다했으니… 격려해 주세요”

입력 2018-02-18 23:38
이상화(왼쪽)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18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마친 뒤 트랙을 나란히 돌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시합 전 설렘 반 긴장 반
100m 기록 너무 빨라
마지막 코너 실수했다”
아쉬운 속내 드러낸 후
승자 고다이라 칭찬도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

이상화 부모도 경기장 찾아
딸의 고별전 지켜봐

“최선을 다했으니 국민들께서 격려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제게는 값진 은메달이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가 열린 18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 올림픽 3연패에 도전장을 내민 이상화(29)가 마지막 은빛 레이스를 마친 뒤 혹독한 훈련과 과거의 영광이 생각나는 듯 흐느꼈다. 하지만 곧바로 이상화는 태극기를 흔들며 빙상장을 돌았다.

환호하는 팬들에게 활짝 웃으며 여제의 마지막 길을 보여줬다. 새로운 승자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등 끝까지 빙상 여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경기를 마친 이상화는 인터뷰에서 “시합 전에는 설렘 반, 긴장 반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긴장했다”고 말했다. 100m 기록이 고다이라보다 빨랐음에도 2위로 처진 데 대해서도 솔직한 느낌을 밝혔다. 그는 “100m 기록이 너무 빨랐다. 이 같은 빠른 속도를 너무 오랜만에 느껴 봐서, 약간 주체할 수 없는 스피드였다”며 “그러다보니 마지막 코너를 실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상화는 그러나 “이번 올림픽 레이스가 재미있었다. 이젠 다 끝났으니 괜찮다”고 후련한 심정을 표현했다.

승자 고다이라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상화는 “나는 1000m 경기를 포기하고 500m에만 도전했지만 그 선수는 1500m와 1000m 경기를 다 하고 마지막으로 500m를 탔다”며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는 표현을 했고, 서로 배울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메달을 위해 소치대회 이후 전진해 왔는데 역시 0.01초차로 싸우는 경기는 힘들다고 느꼈다. 최선을 다했다. 값진 은메달이었다”며 후회 없이 대회를 마쳤음을 내비쳤다.

그에게 가장 큰 힘은 바로 가족이었다. 이상화가 레이스를 마치자 어머니 김인순(57)씨는 얼굴이 상기된 채 오른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딸이 무사하게 은퇴 경기를 마쳤다는 안도감, 온갖 부상에도 꿋꿋이 선수생활을 이어오며 자기 몫을 다한 것에 대한 고마움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김씨는 처음으로 딸의 올림픽 경기를 보러 왔다. 아버지 이우근(61)씨와 오빠 상준(32)씨도 함께 경기장을 찾아 목이 터져라 이상화를 응원했다.

김씨는 1997년 외환위기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딸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했다. 김씨는 새벽마다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서 딸의 연습장을 찾아다녔다. 집 지하실에 옷 공장을 차려 부업을 하는가 하면 은행 대출을 받아 외국 전지훈련을 보내기도 했다. 이상화보다 먼저 스케이트를 배웠던 오빠 상준씨는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다는 동생을 위해 스케이트화를 벗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둘이 같이 스케이트를 배울 수는 없어서였다.

이상화는 “수년간 지원해주신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이상화는 밴쿠버올림픽이 끝난 뒤 서울 모처에 아파트를 구입했고, 소치올림픽 이후에는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경기도 양평에 주택을 샀다.

외가 친지들도 이상화의 고별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이상화의 셋째 외숙모 박미나(59)씨는 “상화야,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 네 덕분에 행복했다. 우리 가족과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줘서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강릉=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