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다이라, 삼수 끝에… 올림픽 신기록 세우며 ‘金’

입력 2018-02-18 23:41
고다이라 나오. 뉴시스

밴쿠버 14위·소치 5위…
네덜란드로 건너가
코치 지도로 정신력 재무장

“이상화는 위에 있던 존재
경쟁하는 것 자체로 행복”

이상화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을 따낸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고다이라 나오는 12위였다. 4년 뒤 소치올림픽에서도 이상화는 금메달이었지만 고다이라는 5위에 머물렀다. 실망한 고다이라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2년간 마리아너 티머르 코치 지도하에 평창올림픽을 준비했다. 18일 36초94의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했다.

티머르 코치는 처음 고다이라를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능력이 충분했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그녀의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었다”고 말했다. 3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탄 고다이라에게 신체적 능력은 충분했다. 어려서부터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나가노현의 산을 달리며 자연스럽게 하체 근력을 키웠던 그였다. 하지만 큰 대회에서 유독 많이 긴장해 일본 언론이 붙인 별명은 ‘수줍은 소녀 나오’였다.

티머르 코치는 고다이라의 사고방식을 고치는 데 주의를 집중했다. 티머르 코치가 “너의 보스가 누구냐”고 물으면 고다이라는 “나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다이라가 경기에 나설 때면 티머르 코치는 “상대 선수는 적이다, 죽여 버리고 잡아먹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다이라의 별명은 ‘보시 캇’(Boze Kat·네덜란드어로 성난 고양이)으로 바뀌었다.

고다이라의 새 별명은 단지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단거리 코치를 맡은 로빈 덕스는 “화를 내는 법을 배운 고다이라는 고양이처럼 자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빙상단 감독은 “얼굴을 ‘성난 고양이’처럼 들고 뛰는 고다이라의 자세는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효과를 낳았다”며 “무게중심을 발바닥 중앙에 둔 결과 피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성난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 고다이라는 2016년 이후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24연승을 했다. 이상화가 2013년 세운 세계신기록(36초36)을 깰 선수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4차 대회에서 36초50의 기록을 내며 이상화에 다가섰다. 10초3대였던 초반 100m 기록은 이날 10초26으로 단축됐다.

평창올림픽 직전인 지난달 20일에는 고다이라의 동료 선수였던 스미요시 미야코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소치올림픽을 함께 출전했던 스미요시의 사망에 고다이라도 실의에 빠졌다. 하지만 일본 선수단의 주장을 맡은 고다이라는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고다이라는 “스미요시는 내게 힘이 될 것”이라며 “평창올림픽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싶다”고 했다.

고다이라는 지난 8일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뛴 연습경기에서 37초05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비공인인 이 기록에 대해 일본 대표팀은 ‘저지대 세계신기록’이라며 고다이라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고다이라는 지난 17일 공식 연습을 마무리한 뒤 “(이상화는) 계속 위에 있던 존재”라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언급했다. 금메달을 결정지은 뒤 이상화를 끌어안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