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1·2·4위 연파 ‘김자매’ 中도 대파

입력 2018-02-18 23:44
18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여자 컬링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의 김선영(왼쪽)과 김초희(오른쪽)가 스위핑을 하며 스톤의 진로와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 중국에 12대 5로 크게 이겼다. 강릉=김지훈 기자

한국 여자 컬링 승승장구

반환점 통과 4승1패 ‘파란’
남은 5경기 2승만해도 4강
컬링 불모지서 기적에 가까워
다음 상대는 5전 전승 스웨덴
김민정 감독 “새 역사 쓰고 싶다”

“고속도로가 아니다. 아직도 가시밭길이다.”

김민정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 감독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 성적을 내고 있는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을 터였다. “주책이다. 힘들었던 것 같다.” 김 감독은 애써 표정을 바꿔 웃었다.

한국 여자 컬링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예선에서 초반부터 세계 톱랭커들을 연달아 격파하고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 1위 캐나다(8대 6), 2위 스위스(7대 5), 종주국 영국(4위·7대 4), 차기 개최국 중국(10위·12대 5)을 모두 잡았다. 일본(6위)을 상대로만 접전 끝에 5대 7로 졌다.

한국의 세계 랭킹은 8위.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 한국보다 하위 랭커는 중국뿐이다. 반환점을 통과한 예선 5차전까지 성적은 4승1패다. 남은 5경기에서 2승만 더해도 4강 진출이 유력해진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기록한 사상 최고 성적(3승6패·최종 8위)은 이미 뛰어넘었다.

컬링은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규칙은 물론 득점 방식조차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컬링 전용경기장은 전무했다. 컬링 선수들이 빙상장에 페인트로 하우스(표적)와 라인을 그려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2006년 경북 의성에 컬링 전용경기장이 처음으로 지어졌지만 입지는 높아지지 않았다. 컬링은 그저 ‘알까기와 빗자루질’ 정도로만 여겨졌다.

김 감독은 18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중국과 예선 5차전을 7점차 대승으로 마친 뒤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 앞에서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평창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컬링의 이런 승승장구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김 감독이 말을 잇지 못하자 대표팀 세컨드 김선영이 거들었다. 김선영은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다. 우리를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열심히 했다”고 했다.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킨 김 감독은 “승률에 집착하지 않고 새 역사를 쓰고 싶다”고 말을 이어갔다.

한국의 다음 상대는 세계 5위 스웨덴이다. 19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예선 6차전을 갖는다. 한국은 이미 충분한 자신감을 쌓았다. 조직력도 톱랭커들 부럽지 않다. 감독과 선수를 포함한 6명의 대표팀 구성원 모두는 김씨 성을 가졌다. 해외에서 일가족으로 착각할 정도다. 팀워크가 생명인 컬링에서 대표팀은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며 서로를 단단하게 연결하고 있다.

스웨덴이 녹록한 상대는 아니다. 앞서 캐나다 스위스 영국은 물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단(3위)까지 세계 랭킹 ‘톱4’를 모두 격파하고 5전 전승을 질주하고 있다. 한국이 스웨덴을 이기면 4강 진출 가능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김 감독은 “올림픽 컬링 사상 최고 성적을 거뒀다고 만족할 상황이 아니다. 가장 높은 자리를 목표로 삼고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