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 고교 총기난사 충격
한동안 잠잠하던 여론 다시 활활
분노의 촛불 워싱턴 정가 정조준
“도대체 총기협회서 얼마 받았나
정치인 모두는 부끄러운줄 알라”
‘총기난사 세대’ 본격 연대 움직임
“사흘 전만 해도 저는 친구 중에 누가 밸런타인데이였던 그날 (이성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을까 생각하던 평범한 고교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의 장례식장에 꽃을 가져다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총격에 단짝을 잃은 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하자 곳곳에서 울음이 새어나왔다. ‘학살은 이제 그만’ ‘총기개혁 당장 시행하라’ 등 각자가 만든 팻말과 현수막이 시위 장소를 가득 메웠다.
미국 사회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총기규제 강화 여론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17명이 희생된 플로리다주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계기다.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간 총기난사 사건을 겪으며 자란, 이른바 ‘총기난사 세대’의 연대 메시지가 미 전역에서 쏟아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업자들의 로비를 받아 총기규제 완화에 찬성한 정치인들을 겨냥해 낙선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지 일간 마이애미헤럴드는 사건이 일어난 파크랜드 마저리스톤맨더글라스 고교의 희생자 유족들과 친구, 교직원 등 1000여명이 17일 오후 인근 연방법원 앞에서 2시간 동안 가두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도시 인구가 3만5000명에 불과한 데 비하면 상당한 규모다.
분노는 워싱턴DC 정가를 향하고 있다. 시위에서 생존자인 이 학교 학생 에마 곤살레스(18)는 “지금처럼 대통령이 아무 조치도 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한다면 도대체 전미총기협회(NRA)에서 얼마를 받았는지 묻겠다”며 “돈을 받은 정치인 모두 부끄러운 줄 알라”고 질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전역의 학생들이 희생자들과 연대하고 있다”며 “1993년 13명이 희생된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태를 시작으로 총기난사 사건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이제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어머니회(MDAGSA)’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NRA에서 로비를 받은 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에 돌입했다.
반발은 여권 지지세력 내부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NYT에 따르면 공화당 주요 기부자이자 부동산 업자인 앨 호프먼 주니어는 같은 날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 공화당 주요 인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서 “살상무기 금지를 지지하지 않으면 모든 후원을 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16일 플로리다주 키비스케인에서 열린 후원회 모금 행사에 참석했다가 “희생자들의 죽음을 축하하고 있는 것이냐”는 야유를 들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대국민 연설에서 총기 규제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이상 문제와 씨름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총기난사범 개인 문제로 치부했다. 그는 이튿날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찾은 자리에서도 용의자의 정신이상 문제만을 강조했다.
체포된 19세 용의자 니콜라스 크루스는 해당 학교에서 전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와 싸움을 한 뒤 퇴학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을 SNS에 게재하는 등 의심스러운 행동을 자주 했다. 그는 경찰에 “악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美 총기규제 불지핀 ‘밸런타인데이의 비극’
입력 2018-02-1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