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따도 못 따도 눈물 쏟던
‘헝그리 정신’ 선배들과 달리
올림픽 무대서 제대로 즐기고
시상식서도 끼 넘치는 입담
올림픽 시상대가 눈물로 흠뻑 젖던 시절이 있었다. 4년의 긴장감을 마침내 떨쳐낸 금메달리스트도,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한 은·동메달리스트도 시상대만 오르면 하나같이 눈물을 쏟았다. 메달을 목에 걸고도 시상식장에 애국가를 울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울상을 짓던 선수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한국 올림피언의 표정이 바뀌었다. 1990∼2000년대생 특유의 흥과 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메달리스트의 표정과 소감은 그들 또래의 표현처럼 ‘쿨(cool)’하다. 솔직하고 개성이 강하다는 의미다. 금메달을 손에 넣을 때까지의 성공담을 꾸며내지도, 은·동메달을 차지한 기쁨을 죄책감으로 위장하지도 않는다.
한국 동계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24)은 애써 감격한 표정을 짓기 위해 무뚝뚝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16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이어진 기자회견 내내 평소처럼 굳은 표정을 하고 나타났다. 심지어 기자들이 “(금메달리스트가) 너무 웃지 않는 게 아니냐”고 질문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면에 가득한 끼는 거침없는 입담을 타고 발휘됐다.
같은 썰매 종목인 봅슬레이 2인승 출전을 앞둔 원윤종-서영우 조를 향해 “형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이라며 잠시 뜸들이더니 “막상 (경기를) 해보니 별게 없더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금메달을 수여받고서는 “아무 표정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진 척을 했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헝그리 정신’만 강조했던 과거의 선수들과 차별화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을 받은 사실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 그는 하루 뒤 “대통령 축전이 온 걸 알고 ‘정말 성공했구나’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긍정의 힘은 장내에서도 발휘된다. 최민정(20)이 지난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수확한 쇼트트랙 여자 1500m 금메달은 긍정적인 태도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일군 성과였다. 지난 13일 열린 500m 결승에서 실격패한 충격을 금세 씻었다. 최민정은 실격패 다음 날인 지난 14일 SNS에 “꿀잼이었다고 한다. 가던 길 마저 가자”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경기에서 메달의 희비가 엇갈린 대표팀 동료 사이의 서먹함은 이제 사라졌다. 1500m 결선에 함께 출전했지만 아쉽게 4위로 밀려 메달을 놓친 대표팀 맏언니 김아랑(23)은 우승한 최민정의 옆으로 다가가 밝게 웃으며 축하했다.
선수 스스로가 자신의 메달을 색으로 차별하던 모습도 이제 과거의 일이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동메달을 차지한 서이라(26)는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나 자신을 위해 헌신한 코칭스태프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결선에서 임효준(22)과 함께 넘어져 가까스로 메달권에 들어갔지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농담을 섞어 “숙소에 복귀한 뒤 라면에 밥을 말아 먹고 싶다”고 말했다. 4년의 땀과 눈물을 ‘허기’로 설명한 서이라의 유쾌한 비유였다.
김철오 기자, 강릉=이상헌 기자 kcopd@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투데이 포커스] 쿨∼하다, 태극 젊은이들
입력 2018-02-1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