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그룹 엑소의 백현이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하며 사생팬(스타의 사생활까지 파헤치는 극성팬)에게 자꾸 전화가 걸려온다고 전화번호를 공개했다가 사과했다. 지나친 관심과 사생활 침해로 고통 받다가 대응했던 건데 실수로 사생팬과 무관한 이의 번호를 공개한 것이다. 대응 방식에 문제가 제기됐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동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애정이 도를 넘으면 공포로 돌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연극의 장르는 스릴러다. 인기 아이돌과 극성팬 사이의 이야기와 흡사한 스타 소설가와 광팬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 연극이 개막했다.
국내 초연작 ‘미저리’는 스티븐 킹이 1987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과 롭 라이너가 90년 만든 영화로 장기간 사랑받았다. 미국 액션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2015년 브로드웨이 연극에 첫 도전하면서 선택해 흥행한 작품이기도 하다.
조난을 당해 몸을 못 가누는 소설가 폴(김상중 김승우 이건명)을 광팬 애니(길해연 이지하 고수희)가 발견해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애니는 작품과 작가에 푹 빠진 삶을 산다. 폴을 발견하게 된 이유도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와서다. 폴이 쓴 소설 미저리 시리즈뿐 아니라 인터뷰 내용도 줄줄 읊는 수준이다. 언뜻 보면 사랑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폭력이다. 애니는 폴의 연락과 출입을 막으며 통제한다.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야. 내가 너의 넘버원이니까”라면서 집착의 끝을 보여준다.
무대 음악 조명은 삼박자를 이루며 스릴러 장르의 색채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집의 내부와 외부를 모두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만든 360도 회전 무대는 애니와 폴이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 더욱 빠르게 회전하면서 긴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조명과 효과음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보조를 맞췄다. 대표적으로 천둥과 번개, 빗소리, 핏빛 창문이 공포 분위기를 잡아주는 식이다.
김승우는 미저리로 첫 연극 무대에 올랐다. 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다 28년 만에 도전이다. 95년 황인뢰 연출가의 드라마 ‘연애의 기초’로 브라운관에 데뷔한 김승우는 연극도 황 연출가의 작품으로 데뷔하게 됐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탄탄한 발성과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 오랜 방송 경험으로 대사의 포인트를 살리는 노련함이 한데 조화를 이루면서 연극에도 어울린다는 인상을 줬다. 오는 4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5만5000∼7만7000원.
권준협 기자
극성팬의 빗나간 사랑 이야기 담은 스릴러… 연극 ‘미저리’ 리뷰
입력 2018-02-18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