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30일 서울 중구 명동 세시봉 음악 감상실. 홍익대 출신의 혈기왕성한 20대 청년 작가 3명은 초조해졌다. 누드 퍼포먼스를 위해 섭외한 모델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작가들 중 유일한 여성인 정강자(1942∼2017)가 직접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첫 누드 퍼포먼스 ‘투명풍선과 누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정 작가의 타계 1주기를 맞아 아라리오갤러리가 회고전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를 서울과 천안 두 갤러리에서 동시에 갖고 있다. 서울은 대표작을, 천안은 아카이브와 최근작을 중심으로 전시 중이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정 작가는 정찬승 강국진 등 당시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동료들과 ‘청년작가연립전’(1967)을 하며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신전’(新展) ‘제4집단’ 등 실험미술 그룹에 참여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초기 퍼포먼스를 이끌었다.
70년에는 한강변에서 펼쳤던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 퍼포먼스에도 참가했다. 문화예술계의 체제 순응을 비판한 행사다. 그해 열린 첫 개인전 ‘무체전’은 사회비판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강제 철거되기도 했다.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 아래 예술은 그렇게 탄압받았다.
작가가 가진 이런 전위성에도 불구하고 ‘키스 미’(1967) ‘휴지의상’(1969) 등 선정적인 이미지만 세간에 각인됐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 미술가는 시대의 벽에 갇히고야 말았다.
정 작가는 첫 개인전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77년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82년 귀국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90년대까지 남미 등 세계 오지를 여행하며 이를 화폭에 원시적인 강렬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시 화풍이 변했다. 전통 한복의 옷고름, 치마 주름, 소매 등에서 모티브를 딴 반구상 작품은 강렬하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복권(復權)을 위해 노혼을 불태웠던 것이다. 그러다 전시를 준비하던 지난해 7월, 지병으로 급작스럽게 별세했다. 이번 전시는 타계 이후 첫 회고전이자 유작전이 됐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정강자는 국내 여성 아방가르드의 선발 주자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라며 “그럼에도 실험미술에 대한 그의 기여도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여성의 신체를 차용한 작업에 대한 선정적인 시각을 감내해야 하는 등 이중소외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김찬동 미술평론가는 18일 “정 작가는 작가 인생 초반에 누드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을 부각시켰지만, 후속 작업이 따르지 못해 실험적인 시도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회화에서도 단색화가 주류이던 80∼90년대 획일적인 것에 반대하며 자기 나름의 시도를 했다. 말기의 한복 모티브 작업들은 아주 독창적이어서 회화 세계도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천안 전시는 5월 6일까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시대를 앞서가다 시대의 벽에 갇힌 여성 아방가르드 작품 재조명… 정강자 작가 1주기 회고展
입력 2018-02-19 05:05 수정 2018-02-20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