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번째’ 행운의 턱걸이… 김지헌의 평창
아버지 권유로 스키 배워
모굴 심취해 국가대표까지
“출전 불가” 통보받고 퇴촌
스위스 선수 부상에 대반전
12일 만에 선수단 합류
1·2차 예선 24·17위 기록
“다음 국제대회서 金 딸 것”
12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스키 남자 모굴 2차 예선전. ‘KIM Ji Hyon’이라는 낯선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우여곡절 끝에 턱걸이로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쥔 한국선수단의 145번째 선수 김지헌이었다.
결과는 예선 탈락. 그런데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드는 세리머니를 한 뒤 그는 관중석으로 달려와 아버지 김태복(57)씨에게 안겼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
김씨는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에 출전한 자체로 자랑스러웠고 다치지 않고 경기를 마친 것에 감사했다”며 “점수와 상관없이 너무 기뻐 안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헌은 아버지 권유로 4살 때 스키를 배웠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실력이 괜찮았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모굴 스키에 푹 빠졌다. 김지헌은 “모굴 스키는 턴도 잘해야 하고, 스피드도 빨라야 하고, 점프도 높아야 한다”며 “다른 생각 하지 않고 경기에만 푹 빠질 수 있는 게 재미”라고 했다.
부상은 걸림돌조차 되지 못했다. 김지헌은 2013년 연습하다 거꾸로 떨어져 오른쪽 어깨 쇄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의사는 “수술하면 6개월 이상 스키를 탈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김지헌은 어깨를 밴드로 고정시킨 채 스키를 탔다. 스키를 그만 타기 싫고, 뼈는 붙여야 했기에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그렇게 국가대표가 됐다.
그러나 올림픽 무대는 멀기만 했다. 지난달 25일 올림픽 출전 불가 통보를 받았다. 좌절한 김지헌은 선수촌에서 짐을 빼던 지난 3일 아버지와 함께 경기도 양평으로 갔다. 할아버지 산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다시는 스키를 타지 않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올림픽에 참가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사흘 만에 눈물은 환호성이 됐다. 예비명단에 있던 그는 스위스 선수의 부상으로 출전권을 따냈다. 본래 144명이던 한국선수단이 145명으로 바뀌었다. 김지헌의 아버지는 당시를 떠올리며 “출전 소식을 듣고 다리가 풀릴 정도로 기뻤다. 지헌이 할아버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뛰어갔다 오셨나보다 했다”고 웃었다.
김지헌은 두 번의 예선 경기에서 한풀이를 했다. 1차 예선에선 69.85점으로 24위, 2차 예선에선 69.85점으로 17위를 기록했다. 김지헌은 “막차로 올림픽 출전을 하게 돼 긴장감이 훨씬 적어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화제가 된 ‘손가락 하트’ 세리머니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평창올림픽은 끝났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김지헌은 “이왕 시작한 거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평창=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사진=윤성호, 허경구 기자
올림픽 막차→예선 탈락→“이제 시작”… 모굴스키 김지헌 ‘도전기’
입력 2018-02-1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