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에 무방비… 꾹 참아라?

입력 2018-02-13 05:05 수정 2018-02-13 14:09

직장인 10명 중 7명이 경험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심각
60%가 불이익 우려 대응 못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호소했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열악한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도 예외가 아니었다. 괴롭힘의 유형은 성희롱부터 인사 불이익과 같은 구조적 문제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심할 경우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지만 불이익을 우려해 별도 대응 없이 꾹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발표한 ‘우리 사회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년 이상 직장 경험이 있는 1506명 중 1104명(73.3%)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의 대다수는 상급자였다. 특히 임원·경영진이 아닌 업무 공간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상급자가 가해자 중 가장 많은 42.0%를 차지했다.

가해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가리지 않았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는 17건의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심층 분석했다. 비정규직·하청 피해 사례 8건 중에선 ‘갑’의 위치에 있는 원청업체 팀장이 가해자로 등장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하청업체 실무자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사직까지 강요했다. 정규직 피해 사례도 9건도 주목할 만하다. 대기업 등 근로조건이 더 좋은 정규직조차 직장 내 괴롭힘의 강도는 엇비슷했다.

괴롭힘은 집중적이면서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심층 분석 결과를 보면 성희롱이나 왕따, 폭언, 폭행이 한꺼번에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기에 구조적인 괴롭힘이 뒤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보고서가 분석한 사례 중 10건(58.8%)이 구조적 괴롭힘으로 분류된다. 부당한 업무 지시나 과중한 업무 부여 등으로 괴롭히고 인사 불이익을 통해 압박을 가했다. 대기업인 A 통신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업적자 만회를 위해 근속 15년 이상인 직원 9000명에게 명예퇴직을 종용했다. 거부한 이들에게는 성희롱, 모욕적 언행과 함께 부당한 업무 지시가 뒤따랐다. 집단적 괴롭힘이 이어지면서 피해도 커졌다. 보고서는 2015년까지 퇴직을 거부한 이들 중 30여명이 자살 등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누구나 피해를 볼 수 있지만 막상 닥치면 불이익을 당할 우려 때문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권위 실태조사를 보면 피해를 입어도 대처한 적이 없다는 응답자가 60.3%에 달했다. 인사 조치 등의 2차 피해를 우려한 것이다. 인권위 실태조사를 주도한 김정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는 “경영전략 차원에서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며 “회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성과를 올리려는 태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대안과 함께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고용부 보고서는 “근로감독을 통한 점검과 예방뿐만 아니라 사업장 단위의 자율적 분쟁해결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고 밝혔다.》관련기사 12면

세종=신준섭 기자 이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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