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오종석] 펜스와 아베의 ‘무례’ 유감

입력 2018-02-12 18:23

지구촌 최대 ‘겨울 축제’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역대 가장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러진 지난 9일 개회식부터 연일 젊은이들의 땀과 환호가 뒤범벅된 축제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는 올림픽정신. 북한이 적극 참여하면서 얼마 전까지 전쟁 위협이 고조됐던 한반도에도 평화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남북이 하나 된 평창올림픽 향연에 전 세계가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그런데 유독 우리의 최대 동맹국인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이웃나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만 어깃장을 놓고 있다. 무례하다는 지적까지 나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 고위급 대표단장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 후 사망한 오토 웜비어 아버지를 동행시켰다. 그는 방한에 앞서 7일 일본 도쿄에 들러 아베 총리와 먼저 회담을 갖고 대북 강경 입장을 공개했다. 그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타협은 도발을 부를 뿐”이라며 “곧 북한에 대해 매우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미소 외교’에 눈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데 펜스 부통령과 의견을 같이했다”고 소개했다.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기 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서해수호관 인근에서 탈북자들과 면담했다. 웜비어 아버지가 동석한 자리에서 그는 “북한은 국민을 가두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하는 감옥 국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어 천안함기념관을 둘러봤다. 평상시 같으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정이지만 축제와 평화의 평창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온 국제사회 리더 미국의 대표단장 자격으로는 왠지 좀 뜬금없다는 느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주최한 사전 리셉션에서는 외교적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개회식에 앞서 오후 5시부터 각국 정상급 인사들과 악수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리시빙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본 행사가 진행될 때까지 의도적으로 나타나지 않다가 뒤늦게 입장, 5분 만에 행사장을 떠나버렸다. 펜스 부통령은 떠나기 전 각국 정상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으나 북한 대표단을 이끄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개회식에서도 다소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사흘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는 북한의 핵 포기 압박을 위한 한·미·일 공조에 흔들림이 없다는 점만 강조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올림픽 성화가 꺼지면 대북 관계의 해빙도 끝나기를 바란다”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꼬집었다. “펜스 부통령이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북한 대표단과의 만남을 거부하면서 만찬을 사실상 보이콧했고, 개막식에서 남북 단일팀 입장 시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쳤지만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던 일이었다.”

남북 관계 개선에 계속 딴지를 걸고 있는 아베 총리는 리셉션 무례에 이어 도를 넘는 발언으로 또 한 번 한국인의 감정을 건드렸다. 그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 한·미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오로지 대북 압박과 한·미·일 불협화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국에 온 듯했다. 물론 북한 핵과 인권 문제는 심각한 사안이고, 대북 압박의 국제적 공조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모든 언행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설사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도 좀 더 절제되고 신사적으로 해야 했다. 남의 나라 올림픽 축제 행사에 와서 꼭 그렇게 깽판 치듯 해도 되는 것인지 정말 유감이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