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에서 일하다 보면 한국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정부 파견이나 고용휴직제도를 통해 근무하는 공무원은 간혹 있으나 기간이 지나면 귀국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력으로 국제기구에 진출한 경우라고 말하기 어렵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인사 총괄책임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을 OECD에 많이 진출시키기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고 하면서, 한국인들을 더 뽑으려고 하니 지원자가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분담금도 점점 많이 내는 상황임에도 아직 국제기구에서 영속적으로 근무하는 한국인의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은 무엇보다 언어장벽 때문인 것 같다.
경험상 국제기구 근무는 젊은이들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첫째,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다. 둘째,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상대적으로 빨리 접할 수 있고 다각적인 해결 방안도 찾을 수 있다. 국경을 초월해 특정 분야에 대한 선도적 해결사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경제적 보상도 한국에 비해 높고 비교적 충분한 개인 시간과 당당히(?) 활용할 수 있는 휴가 등도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경이로운 경제 발전 경험, K팝과 같은 대중문화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 국제사회에서 예전보다 한국 사람들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소다.
국제기구가 갖는 이런 장점 때문에 모집 공고를 내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그야말로 국제 경쟁이 치열하다. 평상시에도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메일을 받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간혹 눈에 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역시 가장 큰 장벽은 언어다. 아무리 어떤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표현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 능력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특히 국제기구는 많은 토론과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표현 능력에 한계가 있으면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교류도 제약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직급이 낮은 사람들도 2∼3개 언어는 기본으로 다 한다. 내가 근무하는 국제교통포럼(ITF)도 파리에 있다 보니 업무적으로 주로 사용되는 영어 외에 불어는 대부분의 직원이 다 할 줄 안다. 따라서 불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의 제약을 받게 된다. 물론 영어라도 완벽히 한다면 그나마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영어도 제대로 못할 경우에는 국제기구에 안착하기 어렵다. 배짱만 가지고 ‘부딪혀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제기구 근무는 배낭여행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험을 준비한다고 해서 의사표현 능력이 갑자기 좋아지지도 않는다. 학습의 동기가 없거나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얻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학습 자체가 괴롭고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구체적 목표를 머릿속에,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아주 조금씩 전진한다는 기분으로 학습을 할 때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청년실업, N포세대, 흙수저·금수저 등 요즘 우리 젊은층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떠올리면 좁은 땅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똑똑한 젊은 인재들이 많은데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는 너무 적은 것 같다. 그렇다면 여러 분야의 젊은 인재들이 큼지막한 파이가 널려 있는 큰 세상으로 더 많이 나가서 다양한 국제기구에 자리를 잡으면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이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국경이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게다. 이를 위해 국가적 지원체계를 보강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외국어가 밥 먹여주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태(OECD 국제교통포럼 사무총장)
[기고-김영태] 외국어가 양질의 일자리다
입력 2018-02-12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