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美 "北 핵·미사일 포기 때까지 압박"
미국은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초청을 한 데 대한 명확한 지지를 표명하지도, 그렇다고 반대 입장을 내놓지도 않았다. 대신 미국은 "한·미 관계에 틈새는 없다"며 한·미동맹의 결속을 강조했다. 북한의 의도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제재 완화에 있으며, 이는 한·미 관계의 틈을 벌리려는 노림수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계기로 한·미가 분열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CBS방송 등에 따르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한국을 떠나 미국행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문 대통령은 나에게 북한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고 자신의 관점을 밝혔다"며 "우리는 한·미가 단호히 대처해서 북한에 최대한의 경제·외교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공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한·미 간 공조에는 이견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은 또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모두로부터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공동의 목적을 굳건히 하겠다는 것을 확약받았다"며 "한국과 미국, 일본 세 나라가 매우 긴밀하게 북한 정권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고위관계자도 기자들에게 "문 대통령이 방북 초청을 받아들이더라도 대북압박 정책은 전혀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이 문 대통령과 북한의 방북 초청을 놓고 의논하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시작해야 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방북 초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과거 20년간 북한과의 대화는 언제나 제재 완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미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아주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미국으로선 제재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현지 언론은 북한의 문 대통령 초청이 한·미 관계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이 남북관계가 호전되는 신호이지만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는 위험이 있다면서 "미국이 회담을 반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의 문 대통령 초청이 한·미 두 나라에 '딜레마'를 안겨줬다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갖는 대화의 관심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최대의 압박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문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정밀한 행보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들쑤시는 日 "北의 완전한 양동작전"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일본과 중국이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일본이 한·미·일 3국의 결속을 무너트리려는 북한의 의도가 있다며 흠집내기에 안간힘을 쓴 반면, 중국은 한반도 문제 진전에 있어 긍정적 신호라고 환영했다.
일본은 북한이 유례없는 대북 제재를 앞두고 조바심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남북정상회담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11일 교도통신은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이 전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핵·미사일 기본 정책이 변하는 것이 (대화의) 대전제"라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극우 성향 산케이는 "북한을 둘러싼 난국을 돌파하는 데 한국 이외에 사용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라며 "뒤집어 보면 국제사회의 일치된 대북 제재가 드디어 효과를 냈음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또 중도 성향의 마이니치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방북 요청은 (본래의 의도와 다른 제스처로 적을 혼란케 만드는) 완전한 양동작전"이라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 아사히신문은 "북한 의도가 어떻든 남북 지도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본래 있어야 할 모습이다. 같은 민족끼리 화해를 통해 한반도의 근본적 대립 구도를 바꾸는 노력을 거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조정을 거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효과를 해치는 행동은 철저히 자제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 본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회담은 한반도 북핵 해결의 장기적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고 아사히는 분석했다.
앞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9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접근법과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뿐 아니라 한·미 연합 군사훈련 관련 사안에도 이견을 보였다. 아베 총리가 "한·미 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말씀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될 때까지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주권의 문제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며 "총리께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박했다.
중국은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문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라면서도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영 환구시보는 11일 사설에서 "정상회담 제안은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핵·미사일 개발 활동을 계속 중단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의심하는 美 “끝까지 압박”… 들쑤시는 日 “北의 양동작전”
입력 2018-02-1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