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쯤이야”… 역사의 현장, 뜨거운 열기

입력 2018-02-09 19:32
내외국인 관중들이 9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모굴 예선경기를 보고 있다. 뉴시스

개회식 스타디움 안팎

방한복·목도리로 중무장
외투 안에 핫팩 붙이고 입장
“걱정했던 것보다 포근하다”
북한 응원단 229명도 참석
붉은색 트레이닝복으로 통일


‘설국’을 찾은 이들은 방한복과 방한모자, 목도리로 온몸을 싸맸다. 두꺼운 스키 고글을 방한 목적으로 쓰고 있는 외국인도 있었다. ‘한국의 알프스’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아무리 역사적인 날이라 해도 예외가 없었다.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움츠리며 “원래 이곳이 황태덕장 터였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관람객들은 9일 오후 3시쯤부터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 앞에 모여들었다. 오후 4시30분부터 입장이 허용됐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영(52)씨는 “외국인도 많을 테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일부러 일찍 나왔다”고 했다. 일본 도쿄에서 왔다는 권오현(81)씨 부부는 “평창이라는 도시를 잘 알고 싶어 관광도 할 겸 일찍 출발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른 아침부터 평창올림픽플라자 주변 도로를 통제했다. 개회식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차량은 셔틀버스와 대회 관계자들의 등록차량뿐이었다. 관람객들은 대관령 환승주차장이나 진부역 부근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개회식장으로 이동했다. 일부 셔틀버스에선 정류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 관광객들은 올림픽스타디움이 눈앞에 펼쳐지자 알아서 하차했지만 일부 외국인 관람객과 해외 선수단 등은 당황하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군 인제스피디움에 머무는 북한 응원단 229명은 이날 오후 3시25분 버스 8대에 나눠 타고 올림픽스타디움으로 향했다. 붉은색 트레이닝복으로 복장을 통일했고, 종이가방에 응원도구를 담아 들었다. 버스에는 핫팩이 여러 박스 실리기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가 우려했던 만큼의 한파는 아니었다. ‘따뜻하다’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체감온도 영하 22도를 기록한 지난 3일 모의 개회식 때와 차이가 컸다. 모의 개회식에 왔던 이들은 품을 파고드는 칼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상당수가 행사 종료 전에 자리를 떴었다.

올림픽스타디움 안팎은 1주일 새 다른 동네가 됐다. 9일 오후에는 한때 영상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입장 수속을 밟는 관람객들은 발을 구르면서도 “생각했던 것보다 춥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경남 창원에서 부인과 함께 온 이동근(67)씨는 “외투 안에 핫팩을 2개나 붙였다. 걱정했던 것보다 포근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올림픽플라자는 찾는 관람객들에게 방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당부한 조직위는 개회식장 전체에 방풍막과 히터를 설치했다. 정작 관람객들은 지붕을 걱정했다. 올림픽 정신인 ‘오륜’을 상징하는 오각형 공연장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관람객들은 “왜 지붕이 없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주고받았다. 제한된 예산과 촉박한 준비 기간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관람객들은 올림픽대회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한반도기, 그리고 남북 선수단의 공동입장 장면을 가장 기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타오를 성화를 누가 성화대에 점화할지도 관심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외국인 관람객의 질문에 응대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처우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개회식을 맞아 한층 힘을 내는 모습이었다.

올림픽플라자 주변 상인들은 하나같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평창’이 선언되던 날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평창 토박이 어상우(46)씨는 2011년 7월 7일 자크 로케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PYEONGCHANG 2018’이라고 적힌 종이를 펼쳐들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씨는 “교통 통제가 많아 손님이 줄었지만 큰 대회를 치르려면 감수해야 한다”며 “내 의무는 대회가 안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나의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 전문 음식점에서 일하는 김선화(55·여)씨는 “개최지가 선정될 때 지역 주민들은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다 환호했었다”며 “드디어 올림픽이 열리는데, 날씨도 풀린다니 하늘에 감사한다”고 했다. 이어 “외국인 입맛에 맞게 맵지 않은 오삼불고기를 메뉴로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평창=이경원 김성훈 심우삼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