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사면초가의 신세다. 묵은 의혹을 쫓아온 수사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고, 전열에서 이탈한 가신들은 MB를 옭매는 진술을 한다. 권력의 무상함을 원통해하기엔 상황이 긴박하고, 정치보복이라 저항하기엔 드러나는 실상이 가볍지 않아 보인다.
결국 다스가 문제였다. 10년도 넘게 MB의 발뒤꿈치에 붙어 따라다녔던 의혹. 허상인 줄 알았더니 점차 실체화되는 중이다.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는 다스 140억원 투자금 반환 의혹, 서울동부지검에 차려진 전담수사팀이 맡고 있는 다스 120억원 횡령 의혹은 이제 하나로 합쳐지려 한다. ‘다스는 누구 것이냐’에 대한 대답이 가리키는 지점에서.
MB는 지난해 6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에 보수가 큰일 났다”고 한탄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적폐청산 수사는 남의 일로 여겼다. 박근혜정부가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을 수차례나 털었지만, 자신은 멀쩡하다는 자신감도 묻어났다. 몰랐던 거다. 보수 기반의 두 정부는 결국 순망치한의 관계. 사정(司正)의 길 또한 이어져 있다는 걸.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유용 사건만 봐도 그렇다. 검찰은 전 정권 청와대를 찍고 전전 정권을 향해 내달렸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이 한 날 구속됐다. MB의 둘째 형은 구급차에 실려 검찰에 출두했고 부인마저 10만 달러 수수 의혹에 휩싸였다. 김희중 전 제1부속실장을 비롯한 오랜 측근들의 투항 소식은 MB를 더 쓰라리게 했을 터다. 지난달 17일 “보수 괴멸을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란 항의 성명을 읽어 내려가는 MB의 목소리는 유달리 떨렸다. 그 3주 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을 구속 기소하면서 MB를 주범이라 지칭했다.
MB 차명재산 의혹의 시발점인 도곡동 땅 역시 MB가 주인인 것으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다. “그 땅이 제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2007년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라는 그간의 천연덕스러운 발언이 거짓으로 결론나면, MB는 설 곳이 없게 된다.
차명재산 의혹은 집안 형제간의 문제나 개인사 영역이 아니다. 논란에 논란이 더해져 사활을 건 정쟁이 됐었고 MB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소송으로 대응해 왔다.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근원적 자격을 묻는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 MB는 이 문제에 웬일인지 침묵한다. 국정원·군의 정치공작 수사, 국정원의 뇌물 상납 수사에는 “짜맞추기 수사”라고 결사항전의 뜻을 밝혔던 그가 차명재산 의혹 수사와 보도에는 말이 없다. 20여년 전 초선 의원일 때 출간한 자전 수필집 ‘신화는 없다’의 제목처럼 기업가로, 정치인으로 쌓아온 신화가 발밑부터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걸까.
MB는 다시 한 번 정치적 승부수로 현 상황을 모면하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몇 달 사이 수사는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다다랐다.
어쩌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은 검찰과의 대면 전 마지막 ‘평화의 시간’일 수 있다. 이제라도 지하창고 어두운 구석에 박아뒀던 진실을 스스로 꺼내야하지 않을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게 해 달라는 호소가 그나마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를 15년 간 보좌했던 김 전 실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통령께서도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
지호일 사회부 차장 blue51@kmib.co.kr
[세상만사-지호일] MB는 없다
입력 2018-02-09 18:38 수정 2018-02-09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