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뱉은 새우… 호반, 수천억 해외부실 대우건설 인수 포기

입력 2018-02-09 05:05
모로코 火電 3000억 잠재부실
대우건설 가치 하락 불가피
“호반 발빼기 전문” 오명
부실 모른 産銀 책임론

“매각 특혜·승자의 저주 논란
인수 포기로 비켜가기” 시각도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지 9일 만에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했다. 대우건설의 해외 사업 부실이 인수 포기의 주된 원인이지만 정치권에서 제기된 ‘호남기업 특혜’ 논란과 ‘승자의 저주’ 위기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호반건설은 이번 인수전으로 전국적인 인지도는 높였지만 또다시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됐다. 대우건설은 기업가치 하락이 불가피해졌고 해외부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산업은행의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매각을 둘러싼 주체 모두가 ‘패자’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우건설의 앞날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호반건설은 8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고, 산업은행에 인수 절차 중단 의사도 함께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대우건설도 이날 호반건설이 매각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매각절차가 중단됐다고 공시했다.

사업다각화를 노리던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이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은 지난 7일 발표된 대우건설의 실적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4분기 실적 공시를 통해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의 기자재 재제작에 따른 3000억원 이상의 잠재 부실 문제를 공개했다. 실적 공개 직후 호반건설 M&A팀은 산업은행 관계자들과 만나 인수 포기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반 입장에선 현재 대우건설이 사업을 진행 중인 카타르와 오만 인도 등에서도 비슷한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외사업은 빌미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에서 제기된 호남기업 특혜 의혹과 대우건설 노조의 반발, 시공 13위 업체가 3위를 인수하며 불거진 운영능력 문제 등에 부담을 느낀 호반이 대우건설 실적 발표를 계기로 재빨리 인수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대우건설 인수 포기로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의 보수적 경영 스타일과 신중한 행보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호반건설은 금호산업, SK증권, 동부건설 등 굵직한 매물이 나올 때마다 유력 인수군으로 분류됐지만 막판에 인수를 포기했다. 주인을 또다시 놓친 대우건설도 기업가치 하락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증권업계도 일제히 대우건설 목표주가를 하향조정하고 나섰다.

가장 난처한 건 산업은행이다. 금호타이어에 이어 대우건설 매각도 무산되며 산은의 책임론이 거세다. 매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대우건설 회계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매각하기도 쉽지 않아졌고, 3조2000억원의 자금 회수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산업은행은 8일 오후 4시쯤에야 “대우건설 주식매각 절차를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산은 관계자는 “대우건설 재매각 추진 여부 등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은이 재매각을 위해 대우건설에 대한 강제 무급휴가 실시 등 고강도 자구책과 해외사업 실태조사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세환 홍석호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