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들뜨지 말고 평창 기회 잘 활용해보라

입력 2018-02-08 17:42 수정 2018-02-08 23:38
평창 동계올림픽이 예상보다 판이 커졌다. 북한은 예비 접촉에서 고위급 대표단 파견에 이르기까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가깝다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사실상 급을 높였다. 평창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거다. 미국은 행정부 2인자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 이어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를 보낸다. 변수가 많은데다 지금까지 워낙 적대적 입장이어서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워싱턴과 평양이 대화를 탐색해볼 만한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문재인정부는 지금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처해 있다. 비핵화 원칙에 따른 한·미와 국제사회의 확고한 대북 압박 대열에서 이탈하지는 말아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올림픽이 끝난 뒤 북한 태도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를 어떤 방식으로 몰아세울지 모른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의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 구상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 외교력의 결정판이 될 수도 있는 평창이 된 셈이다.

워싱턴과 평양은 평창을 놓고 복잡하고도 조심스러운 게임을 하고 있다. 대립 상태에서 미묘한 이중적 메시지를 발신한다. 펜스 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강력한 대북 압박 기조를 재확인했지만,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미 접촉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볼 것”이라고 답변했다. 북한은 “미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말하지만 9일에 김여정을 내려보낸다. 북·미 간 정치적 게임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흘러갈지는 어느 정도 정부의 외교력에 달려있다.

문재인정부는 이 상황에 들뜨지 말아야 한다. 대화 분위기에서 더 나쁜 긴장 국면에 접어든 사례는 많다. 워싱턴과 평양이 급작스레 태도를 바꾸기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중재 역할을 하되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대북 공조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 북한을 손님으로 잘 대접하되 저자세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국내 여론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여정, 김영남의 청와대 방문 시 대화 수위나 휴대했을지도 모를 김정은 친서에 대한 대응 태도 등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미국과 충분히 논의하고 중국에도 설명해줘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외교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평양과 워싱턴, 베이징이 평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출구전략을 짜도록 정부가 역할을 한다면 우리의 레버리지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맘대로 안 되는 게 국제외교이고, 예측불가인 게 북한이다. 올림픽 기간 내내, 그 이후에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상황을 잘 관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