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상화폐에 국민연금을 투입했다. 200조원이 넘는 돈을 날렸는데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반트럼프 시위로 4명이 사망했다. 반미 시위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전형적인 가짜 뉴스(fake news)다. 가짜 뉴스는 실제로 보도된 기사처럼 꾸며 유포시키는 거짓 정보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재미있지만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고 의심하기 마련이다.
‘힘들 때마다 국기를 생각하라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말에 어린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박 감독이 선수들을 잘 이끌어 좋은 결과를 일궜다는 기사다. 의심할 필요를 못 느끼는 미담이다. 그런데 이게 가짜 뉴스다. 한 네티즌이 베트남 현지 언론의 보도인 것처럼 지어낸 이야기다. 그는 확인도 안 하고 기사를 쓰는 국내 언론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가짜 뉴스인데 권위 있는 언론사들이 앞다퉈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현실이다.
그럼 이것은 어떨까. ‘청와대 직원 500명이 탄저균 백신을 수입해 주사를 맞았다.’ 지난해 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다. 보수적인 군사전문가가 한 인터넷 매체에 실은 기고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청와대가 적극 반박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표적인 가짜 뉴스라고 경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이것은 SNS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가짜 뉴스와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 출처가 분명하다.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전문가의 기고문이다. 이제 가짜 뉴스의 개념이 슬슬 모호해진다. 청와대 경호실이 치료용 미국산 탄저 백신을 도입해 국군병원에 보관 중인 것은 팩트다. 그러나 청와대 직원들만 예방용으로 맞았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억측이다. 이를 토대로 ‘자기들만 살고 5000만 국민은 죽어도 좋다는 것인가’라고 한 것은 지나치게 악의적이라는 게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렇다면 가짜 뉴스와 오보를 구별하는 기준은 고의성일까, 얼마나 악의적인지 정도 차이일까. 그것도 아니면 객관적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정치적 성향일까.
오보는 생산 과정에서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확대·왜곡된 보도를 의미한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뉴스를 만들다가 어쩔 수 없이 오보를 낸 경우라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다. 100% 정확한 보도는 불가능하다는 한계 때문이다. 오보냐 가짜 뉴스냐에 따라 책임지는 정도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특정 언론사 기자들의 당 출입을 금지시키며 벌이는 ‘가짜 뉴스와의 전면전’이 옳은지 그른지 논하는 근거도 이것이다. 오보를 가짜 뉴스라고 공격하면 언론의 자유가 침해된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놓고 국민의 알 권리만을 강변하면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을 제대로 구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언론은 심각한 신뢰 위기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권력 및 자본과의 결탁을 구조적으로 끊어내지 못하는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앞장선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온라인 시대를 거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선정적 뉴스를 쏟아내고 눈길을 끄는 기사라면 일단 베끼는 악습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보니 사회 곳곳에서 가짜 뉴스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기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어땠는지, 언론에 의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오랫동안 확립된 원칙을 지켰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나와 생각이 같으면 공정한 보도를 하는 정의로운 기자이고, 생각이 다르면 쓰레기가 만든 가짜 뉴스다. 그래서 다시 고민에 빠진다. 정글과 같은 언론 생태계 속에서 ‘이 뉴스는 매우 공들여 만들었고, 현재 편집국에서 가동 중인 엄격한 데스킹 시스템을 거쳤습니다’라고 콕 집어 알릴 방법은 무엇일까.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여의춘추-고승욱] 얼굴이 화끈거리는 가짜 뉴스
입력 2018-02-08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