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적용기준 애매한 경우 많아 조항 해석에 애 먹어
항공기 방북·만경봉호 입항
北 협의 사항 美 실시간 전달
북한이 요구한 유류 지원
여행금지 대상인 최휘 방남
안보리 제재 예외 인정 필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교류가 급진전되면서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조항을 일일이 확인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부는 제재 위반을 피하기 위해 시나리오별로 사전 검토를 진행했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제재 조항이 추상적이고 적용 기준도 애매해 애를 먹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북 제재망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한국과 미국, 일본의 독자제재가 얽혀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정부는 북측과의 협의 사항을 실시간으로 미 정부에 전달하고, 해석을 구하고 있다.
지난달 9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확정된 이후 정부는 두 건의 대북제재 예외 조치를 취했다. 우리 측 항공기의 방북과 북한 선박의 국내 입항이다. 지난달 31일 우리 선수단을 태우고 원산 갈마비행장에 착륙한 아시아나 항공기는 원래대로라면 미국 행정명령(13810)에 따라 180일 동안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미 재무부로부터 제재 예외를 허가받았다. 정부는 또 만경봉 92호 입항을 위해 5·24 조치에 예외를 뒀다.
정부 관계자는 7일 “북측에서 600명 가까운 인사가 내려와 공연, 응원 등 다양한 행사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대북 제재 위반 위험이 있었지만 모두 피했다”고 말했다. 두 건의 예외 조치는 관련 조항이 명확해 결론을 내기가 비교적 수월했다고 한다.
미국의 독자제재는 법과 행정명령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조항만으로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미 정부의 해석 재량도 커 그만큼 디테일한 검토가 필요하다. 예컨대 ‘상당한 양(significant amount of)의 재화나 용역을 북측에 제공해선 안 된다’고 했을 때 상당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적으로 미 정부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된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의 방남과 직결된 문제다. 김여정은 미 재무부가 2017년 1월 발표한 제재 대상에 포함돼 미국 입국이 금지됐다. 김여정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 자체는 제재 위반이 아니다. 그러나 ‘북측에 상당한 양의 지원을 할 수 없다’는 포괄적인 규정 때문에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는 미 측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김여정에게 어느 선까지 편의 제공을 할 수 있는지는 미 정부 해석에 달려 있다”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휘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의 방남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첫 사례다. 최휘는 안보리 결의 2356호의 여행금지 및 자산동결 대상이기 때문이다. 유엔 제재 대상은 개인 79명, 단체 54곳이다. 외교부는 유엔과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북측은 우리 정부에 예술단 숙소로 사용 중인 만경봉 92호에 대한 유류 지원을 요청해왔다. 대북 유류 지원은 유엔 안보리 결의, 미국 독자제재에 모두 걸려 있다. 정부가 만경봉 92호에 유류를 지원하기로 최종 결정하면 대북 제재 예외 적용 사례는 더 늘어나게 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평창서 실감하는 촘촘한 대북제재… ‘예외적용’ 피말리는 조율
입력 2018-02-0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