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28시간 근무+임금 4.3% 인상… ‘노동혁명’ 이룬 독일

입력 2018-02-07 18:34

세계 노동운동사 일대 전기
통독 이후 최저 실업률 덕분
정치이어 경제도 유럽 선도


독일 노동계가 ‘주 28시간 근로제’ 실험을 시작한다. 보다 나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노동자가 주 4일 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노동자 중심 탄력근무제다. 이웃 프랑스가 2005년 주 35시간 근로제를 전 세계에 확산시킨 데 이어 이번에는 독일이 세계 노동시장에서 선구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지 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사설에서 “돈보다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게 새로운 신조”라며 28시간 근로제 도입 의미를 평가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최대 금속노조 ‘이게메탈(IG메탈)’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지부와 경영자 단체 ‘남서부 금속경영자연맹’은 6일(현지시간) 6차 협상 끝에 합의안을 발표했다. 노동자가 향후 2년간 주당 근무시간을 현행 35시간에서 28시간까지 줄이도록 선택할 수 있는 안이다. 반대급부로 경영자는 희망자에 한해 사업장 노동자의 최대 절반과 주 40시간 근로계약을 맺을 수 있다. 4월부터 전체 임금 4.3%를 올리는 안도 포함됐다.

합의안은 철강 관련 산업의 중심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노동자 약 90만명에게 일단 적용된다. 이 지역에는 포르쉐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 제조사 다임러 등 유명 업체 공장들이 모여 있다. 주 28시간 근로제가 이 지역에 성공적으로 정착될 경우 독일 전역의 해당 산업 종사자 390만명 역시 같은 근무조건에서 일할 확률이 높다. 슈피겔은 “(이번 합의가) 독일의 다른 산업 부문에도 신호를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합의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지난해 독일 경제가 기록적인 호황을 보인 덕이 컸다. 호황일 때 파업으로 노사 양쪽 모두 손해를 보느니 노사가 윈윈하는 타협안을 도출한 것이다. 지난해 독일은 유럽 지역 수요 회복으로 2011년 이래 가장 높은 2.2%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지난해 8월 기준으로 3.6%를 기록, 1990년 통독 이후 가장 낮았다.

이번 합의는 노동 유연성 관련 노사 합의의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세계 노동시장에서 새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다만 노동자가 소득 감소를 감내하고 생활의 여유를 택할 정도의 임금을 확보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같은 조건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독일 노동자들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가 적고 기본소득도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다수 노동자가 연장근무로 겨우 생활이 가능한 상황이란 점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