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관 신상털이는 사회를 천박하게 만들 뿐이다

입력 2018-02-07 17:3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후 정형식 부장판사에 대한 개인 신상털이와 마구잡이 비난이 도를 넘었다. 일부 네티즌이 그의 친인척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에는 쓰레기 판사, 반역자 등 원색적 표현이 많다. 논리도 합리성도 없고 그저 왜 풀어줬느냐이다. 이런 주장으로 시각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짜릿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주장의 편협성만 드러낼 뿐 객관적 신뢰도는 확보하지 못한다.

민주사회에서 판결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판결 이유에 대해 법리와 상식, 일반적 법 감정을 들이대면서 조목조목 비판할 수도 있다. 관점이 다르면 당연한 일이고, 이번 판결에 관점을 달리하는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논거와 상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재벌 총수를 풀어줬으니 무조건 적폐 판사니, 확신범이니, 법복을 벗기라느니 하며 추상적 용어와 저급한 수준으로 공격하는 건 천박하다. 더 우려스러운 건 신상털이다. 친인척이 누구고, 그 사람들의 성향이 어떻고, 그러니 그 판사도 한 통속이다 하는 식의 주장은 누가 봐도 몰상식적이다. 정신적 린치에 가깝고 법치주의를 모독하는 행위다.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어대는 정치인들 언동은 더 무책임하다. 여당 대표가 판경유착이라고 말하고, 원내대표는 분노라는 표현을 썼다. 음모론을 펼치는 이도 있다.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는 정치는 건강치 못하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으므로 법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논리를 적절한 방법으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정치를 자꾸 저급하게 몰고 가지 말아야 한다.

판결한 지 하루가 안 된 시점에 판결 이유와 심경 등을 공개적으로 말한 정 판사는 신중치 못했다. 법관은 판결 이유를 판결문으로만 말하면 된다. 판결하기까지의 엄청난 고뇌는 오롯이 법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