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7일 정부 개헌안 마련에 착수했다. 전문성과 대표성을 갖춘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민개헌자문특위를 구성키로 했다. 온·오프라인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해 다음 달 중순까지 개헌안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다. 속도감이 느껴진다. 일차적으론 개헌 논의가 더딘 정치권을 최대한 압박하려는 전략이다. 국회 합의가 어려울 경우 ‘60%의 국정 지지율’을 바탕으로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 정국을 조성하겠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헌법상 개헌안 발의권을 갖고 있기에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개헌에 ‘국회 3분의 2 동의’라는 조건이 달린 이유가 있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헌법을 바꾸지 못하게 하려는 취지다. 또 대통령이 독자 개헌안을 발의하는 순간 정치권은 무한 정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마저 대통령 개헌안 발의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개헌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117명만 반대해도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탓에 야당에 개헌 불발 책임을 떠넘겨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청와대가 개헌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내용도 문제다. 이번 개헌의 시대정신은 권력구조 개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끌어낸 개헌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에 초점을 두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개헌안에도 대통령 권력 분산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권력구조 개편을 제외한 개헌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기존 대통령제를 고치기보다 지키려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지적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대통령이 나설 필요가 없도록 국회가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책임이 막중하다. 개헌만큼은 고도의 협치가 필요하다. 갈 길이 바쁘다고 과속을 해선 안 된다. 마지막까지 야당과 협의하고 설득해야 한다. 개헌 문제에 있어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말할 자격조차 없다. 이번 달 말까지 자체안을 내겠다면서도 투표 시기는 연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6월 개헌 투표가 성사되면 문재인정부의 성과로 부각돼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시기를 늦추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직무유기에 가깝다. 개헌 논의에 계속 참여하지 않는다면 지방선거에서 거대한 역풍에 직면할지 모른다. 청와대와 정치권 모두 개헌만큼은 정략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개헌이다.
[사설] 대통령 아닌 국회가 개헌 주도해야
입력 2018-02-07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