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자코메티 이야기’] “자코메티는 뭔가 지워나간 후 핵심만을 전달했죠”

입력 2018-02-07 18:31 수정 2018-02-07 21:37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도슨트인 김찬용씨가 최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을 상대로 자코메티 작품들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최근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이 한창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찾았을 때, 전시장에선 관람객 30여명이 이 남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웃음을 터뜨렸고 탄성을 내뱉었다.

남자는 관람객에게 자주 퀴즈를 냈다. 가령 자코메티의 유작인 ‘로타르 좌상’ 2개가 전시된 공간에 들어섰을 땐 “두 작품 가운데 더 비싼 조각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다. 관람객 상당수는 당황스러워했고,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말문을 열었다.

“바로 여러분 오른쪽에 있는 작품이 더 비싼 조각입니다. 작품 평가액이 3000억원을 웃돕니다. 이유는 원본 석고상이기 때문이죠. 나머지 하나는 이 원본을 토대로 만들어진 청동상입니다. 원본 석고상은 너무 귀한 작품이어서 해외 반출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이 한국에 전시된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죠.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독대하고 있으면, 이게 그냥 돌덩어리가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친절한 해설을 들려주는 남자의 이름은 김찬용(34)씨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열리고 있는 자코메티 전시에서 도슨트(docent·전시 해설사)를 맡고 있다. 그는 유머와 깊이를 두루 갖춘 해설을 들려주고 있어 특별전의 숨은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뷰는 관람객을 상대로 작품 해설이 끝난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도슨트로 일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건 무엇인지 물었다. 김씨는 “관객과의 공감”이라고 답했다. 그는 “도슨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좋은 정보를 선별해 이해하기 쉽게 관람객들에게 전달해주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2004년 수원대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도슨트로 처음 일하기 시작한 건 2007년. 이때부터 그는 10년 넘게 70개 넘는 전시회에서 도슨트를 맡았다.

자코메티는 그가 오래전부터 좋아한 작가였다. 자코메티는 조각가로 유명하지만, 김씨는 자코메티가 그린 회화 작품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자코메티는 자신을 조각가라고 부르는 걸 싫어했다. 조각과 페인팅을 넘나드는 예술가가 되고자 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

“조각이 유명하지만 자코메티의 그림도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그는 그림을 그릴 때도 필요 없는 것들은 걷어내고, 본질만을 담으려고 노력했었죠. 하나씩 뭔가를 지워나가다가 마지막에 남는 무언가를 통해 인간의 핵심을 전하려 했던 게 자코메티였어요.”

김씨는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상주하면서 하루에 네 차례씩 해설을 맡는다. 그의 해설은 오전 11시30분부터 2시간 간격으로 이뤄진다. 1시간 해설을 한 뒤 1시간 쉬고, 다시 1시간 해설에 나서는 게 요즘 그의 일상이다.

수많은 관람객을 상대하니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관람객 중에는 작품을 감상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며칠 전에도 ‘걸어가는 사람’이 전시된 ‘묵상의 방’에 들어갔더니 한 중년 여성이 울고 있더라”며 “좋은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선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자코메티의 작품은 ‘로타르 좌상’이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해 아무도 없는 전시장에서 혼자 로타르 좌상을 감상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자코메티의 삶을 되새기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별전의 성공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호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흥행에 탄력이 붙을 겁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