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류영진] 국민이 관리하는 식품안전

입력 2018-02-07 17:44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다. 식품 안전과 관련된 국민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안심하는 이유는 비슷하지만 불안해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로 제각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식품 안전관리 수준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 요구와 기대는 더욱 높고 다양해지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문재인정부의 국정지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국민 요구를 반영한 정책을 마련해 국민 삶이 달라질 수 있도록 많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능동적인 자세로 국민 개개인의 요구사항을 정책에 반영한 ‘국민 중심의 안전 정책’을 추진 중이다.

올해는 국민이 식품과 의약품에 대해 불안을 느끼거나 궁금해 하는 내용을 검사 요청하는 경우 실험을 거쳐 결과를 알려주고 개선사항은 정책에 반영하는 ‘국민청원검사제’를 운영할 예정이다. 이 제도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로서 국민과 직접 소통해 국민이 그 권리를 당당히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취지다. 검사 청원은 식약처 홈페이지에 마련된 창구를 통해 누구나 할 수 있고 일정 수 이상 동의하면 채택된다. 채택된 요청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이 제품을 수거해 검사하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영상으로 촬영하고 팟캐스트, SNS 등을 통해 알려준다. 다만 특정 업체에 피해를 주거나 허위·거짓 사실을 기재한 청원에 대해서는 걸러내고 필요시 제품명이나 업체명 등을 비공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소비자단체·학계·업계 등 분야별 전문가로 ‘민관협의체’를 운영해 검사 대상 선정, 시험·검사방법 타당성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지난해 2월 해외직구로 유통되던 독일산 분유 제품에서 방사능이 과량 검출됐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엄마들이 패닉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특히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또 다른 거짓 정보들이 확산되면서 불안감이 더욱 커져갔다.

혼란을 빠르게 해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엄마들이 요청한 분유 검사를 신속하게 수용하고 그 결과를 빠짐없이 공개한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된 해외직구 제품을 직접 구입해 검사하고 위해평가하는 모든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해 공개한 것이 큰 믿음을 주었다. 이러한 경험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확대·강화한 것이 ‘국민검사청원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 소비자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국민 참여 열린 포럼’도 개최할 계획이다. 이 포럼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식품·의약품·의료기기·화장품 안전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1000여명으로 구성된 소통단을 운영해 국민 관심 사항과 불안 요인 등을 정책 사안으로 제안한다. 의제는 포럼에서 국민과 함께 토의한 후 정책을 추진해 제도 개선으로 이끌어 낼 예정이다. 정책 현장에서 학생, 주부, 업계, 전문가 등 정책에 관심 있는 국민이 더 나은 정책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가치를 공유하는 ‘정책 콘서트’도 주기적으로 운영해 국민과 직접 소통을 넓혀 갈 계획이다.

올해 시행되는 정책들은 국민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국민은 정책에 직접 참여해 삶이 윤택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기업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비자 마음을 읽어 소비자가 원하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나날이 커지고 다양해지는 소비자 요구와 기대를 신속히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업계·정부 모두를 위한 정책이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시행 초기에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제도가 잘 정착돼 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