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은퇴 목사들은 소위 ‘소외계층’이다. 대부분 후임 목회자가 자유롭게 목회할 수 있도록 자신이 섬기던 교회를 떠나고 있다. 평생 목회하던 사람이 교회를 떠나면 마땅히 발붙일 곳이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재단(이사장 임원순 목사)이 2014년 초부터 원로목회자들의 일상과 신앙생활, 건강 및 생활고 문제를 적극 지원해 주목받고 있다. 이 단체 총재 한은수 감독을 7일 서울 종로에서 만나 원로목회자 현황과 돌봄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한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100세 시대’에 원로목회자 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교회 원로목회자 수가 약 1만2000명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의 사정이 매우 딱하다는 점입니다. 한 원로목사는 한 달에 4만5000원으로 생활한다고 해요. 평생을 미자립교회에서 목회하고 은퇴해 손 벌릴 데도 없고요. 폐지나 고물을 주워 판매한 돈으로 생활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다른 원로목사님도 중형교회 목회자 출신이지만, 교회 재정에 폐 끼치기 싫다며 도움을 받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막상 은퇴생활은 안타까울 정도예요. 재단이 두 달에 한 번 제공하는 쌀 20㎏과 건강보조식품,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합니다.”
-원로목회자들이 이렇게 어려운 줄 미처 몰랐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원로목회자를 돌보게 됐는지요.
“4년 전 일인데요. 저희 재단 이사장인 임원순(서울지구촌교회 원로) 목사님이 어디서 무슨 말씀을 듣고 오셨는지 갑자기 원로목회자들에게 점심을 대접하자고 하시더군요.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어. 평생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섬긴 원로목사님들을 모시고 잔치 한번 열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잔치를 준비했지요. 원로목회자 부부들을 초청해 오찬을 제공하고 한국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했어요. 사실 한 번만 하려고 했는데 너무 좋고 뜻깊은 행사라고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계속 행사를 열게 됐습니다. 이후 ‘한국교회 원로목회자의 날’과 ‘자랑스러운 원로목회자 대상’도 시상하게 됐고요.”
-재단도 그런 의미로 발족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재단은 2014년 12월 발족했습니다. 한평생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살아오신 원로목회자들을 위로하고, 한국교회·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후배들에게는 사명감과 선교정신을 고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재단 설립은 한국교회 선교 130여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역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원로목회자가 은퇴한 이후 여가생활과 사역, 봉사활동을 잘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습니다. 은퇴 목사들은 3무(無)를 말씀하십니다. 은퇴하고 나니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갈 곳이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할 일이 없어 시간을 보내는 은퇴 목회자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재단은 지난해 3월 종로5가에 원로목회자 쉼터인 ‘목자카페’를 설립했습니다. 이곳을 찾는 원로목회자들은 차와 음료, 다과를 무료로 제공받습니다. 동료 원로목회자들을 만나 각종 정보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지요.”
-지난해 재단 사역에 국민일보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네, 지난해 3월 국민일보와 공동으로 ‘원로목회자 복지증진을 위한 캠페인 출정식’을 가졌습니다. 호응이 대단했어요. 이 캠페인이 좋은 열매를 맺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전에 원로목회자 모임에 한 교계 인사가 오셔서 ‘복지는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통한 신앙적 복지’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 말씀에 동감합니다. 재단 임직원들은 원로목회자들의 신앙적 복지를 위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원로목회자들의 생활고 문제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원로목회자는 쪽방촌에서 살기도 하고 농어촌에서는 폐가를 수리해 사는 분도 계십니다. 주위 교인들이 쌀이나 김치 등 반찬거리를 제공하면 먹고, 없으면 금식한다는 분도 계시고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지금 세습이니 승계니 한국교회가 시끄럽지만 시골교회 목사님들은 교인이 몇 명 없다 보니 후임자도 구할 수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사명감 하나로 은퇴하지 못하고 교회를 섬기는 분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재단은 이런 원로목회자들에게 건강식품과 쌀, 떡과 김치를 전달하고, 수시로 영정사진을 찍어 드리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원로목회자를 위한 교회도 설립했는데요.
“지난해 봄인데요. 처음엔 30평 남짓한 목자카페에서 20여명이 예배를 드렸어요. 그런데 원로목회자들이 매주 크게 증가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지금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17층에서 300∼400명이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원로목회자로 구성된 성가대도 있고요. ‘찬양인도 위원회’ ‘악기연주 위원회’ ‘예배위원회’ ‘중보기도 위원회’ 등이 신나게 활동하는 행복한 공동체입니다. 다음 달엔 부흥사위원회도 발족할 예정입니다. 부흥사위원회 위원들은 전국 교회를 돌며 무료로 부흥회를 인도할 계획입니다.”
-재단의 올해 계획은.
“원로목회자 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회관을 건립해 예배와 성경상담지도, 의료재활, 사회교육 및 복리후생, 전시회 공간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이것은 재단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관심과 후원을 요청합니다. 원로목회자 회관이 마련된다는 것은 기독교 복지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회관 건립의 첫 사업인 ‘선교관’도 목자카페 옆 건물에 마련해 인테리어가 한창입니다. 책상과 의자, 온풍기 에어컨 사무집기 컴퓨터 등의 후원을 접수하고 있습니다. 관심 부탁드리고요. 선교관에는 원로목사님들의 가슴 절절한 선교 이야기가 자료로 만들어져 보관될 예정입니다. 감동과 은혜가 넘칠 것 같지 않나요.”
한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와 감리교신학대 목회신학대학원, 미국 세인트폴 신학대학원 등에서 수학했다. 연세대 문과대 기독학생연합회장, 연세대 총동문회 목회자부흥협의회 상임회장, 감리교신학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재단 총재 외에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자문위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과 부흥사회 실무회장, 한국범죄예방국민운동본부 대표회장, 한국기독언론재단 총재, 예수교대한감리교 웨슬레총회 감독 등으로 섬기고 있다(후원: 하나은행 278-910019-56204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후원회).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생계 곤란 일부 원로목회자들, 폐지·고물 주워 생활도”
입력 2018-02-07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