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공작선 vs 평화사절단… 두 얼굴의 만경봉호, 이번엔?

입력 2018-02-07 05:05
부산 시민들이 2002년 10월 15일 만경봉 92호에 탑승해 다대포항을 떠나는 북측 아시안게임 응원단을 환송하고 있다. 이 배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공연할 북측 예술단을 태우고 6일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 들어왔다. 국민일보DB

부산亞게임 ‘평화사절단’으로… 일본인 납북 공작선으로…

2002년 北 응원단 태우고
부산에 입항 열렬한 환영 받아

마약 반입 통로로 활용돼
日서는 범죄와 동일시되기도

美, 대북제재 무력화 우려
“만경봉호 입항, 北의 승리”


부산 시민들은 2002년 10월 15일 만경봉 92호가 기항(寄港)하던 부산 다대포항을 떠날 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북한의 부산아시안게임 응원단 등 356명을 태웠던 이 배는 남북 바닷길을 이은 평화의 사절처럼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내 북한 공작원에게 지령을 전달하고 마약 반입 통로로 활용됐던 어두운 면도 품고 있다.

6일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만경봉 92호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한 시민단체가 오히려 해상 환영행사까지 계획하자 관계기관들이 긴급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북한 응원단과 지역 주민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다대포여객터미널 근처에 경비초소를 증설하고 부두 앞에는 통제선을 설치했지만,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만경봉 92호를 타고 온 북한 응원단은 ‘미녀 응원단’이라는 별칭과 함께 환영받았다. 이들은 옷차림과 표정 등 모든 행적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손을 만져 보자”며 북한 응원단 버스에 매달리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북한 응원단의 귀환이 예정된 부산아시안게임 폐막 무렵에는 시민들이 다대포항에서 만경봉 92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만경봉 92호는 스포츠외교의 장이기도 했다.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은 북한 장웅 IOC 위원과 함께 이 배에 올라 남북 체육교류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북한 응원단은 우리 측 안전 담당자 50여명을 배로 초청해 오찬을 제공했다. 식당은 물론 영화관과 목욕탕, 면세점까지 갖춘 시설들도 화제가 됐다.

이런 만경봉 92호는 북·일 관계 속에서는 제재의 대상이었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상공인들의 모금으로 건조된 이 배는 일본의 시각에서는 오래도록 범죄와 동일시됐다. 마약이 일본으로 밀수되는 통로였고, 일본인을 북한으로 납치하는 공작선이었다. 일본 경시청은 “북한이 만경봉 92호를 통해 일본에 있는 북한 공작원들에게 지령을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은 납치 문제가 대두되던 2003년 6월 니카타시에 입항하는 만경봉 92호에 대한 안전검사를 강화했다. 북한 원산시와 일본 니카타시 사이를 월 2∼3회 운항하던 만경봉 92호는 이후 수차례 입항을 취하하게 된다. 일본은 2004년 6월 특정 선박의 입항 금지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만경봉 92호의 입항을 제한할 수 있는 조건들을 아예 명문화했다.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에는 6개월간 북한 전세기의 일본 착륙과 만경봉 92호의 입항을 금지시켰다.

이후 이 배는 일본 해역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북한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와 행방불명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히자 일본은 대북제재 조치의 일부를 해제했다. 인도주의 목적의 북한 선박이 일본에 입항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이때에도 만경봉 92호만큼은 제재 해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만경봉 92호의 한국 입항은 ‘북한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5·24 조치(2010년 천안함 피격 이후 나온 대북교류 금지 조치)가 깨진 선례가 만들어졌고, 미국의 대북제재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취지다. 우리 정부는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5·24 조치의 예외적 적용을 결정했다.

강릉=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