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이렇게 끝난 李 욕심… 학생·교수 흩어지고 대학촌은 적막

입력 2018-02-07 05:05 수정 2018-02-07 11:20
오는 28일 폐교되는 전북 남원 소재 서남대 정문에 눈이 쌓여 있다. 학생과 교직원, 주민들의 발길이 끊긴 대학은 온기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국민일보DB
서남대 폐교로 학생이 떠난 자리에는 문 닫은 상가들이 남았다.
문 닫은 상가들.
서남대생이 모여 살던 율치마을의 편의점 주점 당구장은 장사를 접은 채 방치돼 있었다.
오는 28일 폐교 앞둔 서남대 르포

문어발식 확장에 횡령이 결정타
회생 불능 부실대학으로 결국 퇴출

인근 음식점·편의점 등 잇단 폐업
주민들 생계·심리적 타격 이중고

재학생, 타대학으로 편입 ‘눈칫밥’
직장 잃은 교수들은 이직 동분서주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오후 2시.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워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주인이 부스스 일어났다. 손님 발길이 끊긴 식당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자장면 한 그릇을 내온 주인 김용태씨는 “막막하다”고 했다. “자장면이 참 맛있다”는 칭찬을 들은 주인은 학생들과의 추억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김씨는 1996년 전북 남원의 서남대 옆에서 중국집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5분 거리여서 장사가 잘 됐다. 쾌활한 재학생들도 좋았지만 특히 반가운 손님은 졸업생이었다. 근처 지나다 생각나서 왔다며 한 그릇 먹고 갈 때마다 가슴이 훈훈했다. “저한테도 추억이겠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비슷하겠죠. 장사 걱정도 그렇지만 학생들을 이제 못 본다니 가슴에서 뭔가 도려내진 듯하네요”라고 말했다.

돌아오지 않는 학생들

서남대는 오는 28일 문을 닫는다. 1991년 개교한 서남대는 설립자 이홍하씨의 문어발식 대학 확장과 1000억원대 교비 횡령(서남대 333억원) 등으로 내리막을 걸었다. 교육부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으며 부실 대학의 대명사로 지탄을 받았다. 대학 구성원들이 의대를 중심으로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올해 초 폐교가 확정됐다. 학부생 1893명과 대학원생 138명은 인근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교직원 200여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서남대 폐교는 중국집 주인 김씨 같은 인근 주민들의 삶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서남대 옆 율치마을은 대학생을 위한 원룸촌이다. 지난 2일 율치마을에선 노인정에서만 간간이 말소리가 새어나올 뿐 사람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당구장에는 셔터가 내려진 지 오래됐는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원룸들도 텅 비어 있다고 했다. 그나마 문을 연 편의점도 폐업 정리 중이었다. 피자와 만두, 라면 코너는 텅 비어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고교생은 “이달 중으로 문을 닫습니다. 물건은 다른 편의점으로 옮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인근 슈퍼마켓 사장은 “전기요금이라도 아끼려고 낮에는 가게 안에 불을 끕니다. 어떻게 살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율치마을에 사는 고3 수험생 이모양은 서남대가 어릴 때부터 놀이터였다고 했다. 방학 때 언니 오빠들이 빠져나가더라도 개학하면 어김없이 돌아와 동네에 활기를 넣었다. 이젠 빨리 대학에 진학해 다른 곳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이양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는데 학생이 주 고객이어서 생계를 이어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늘 곁에 있었기 때문에 평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동네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졌어요.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외국인 노동자들만 남겠죠.”

힘겨운 겨울나기

인근 대학으로 편입한 서남대 학생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학벌세탁’이란 부정적 시선을 온몸으로 받은 듯 특별 편입 과정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받은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요청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의대생 Y씨(24)는 “서남대생 편입을 반대하는 분들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한다”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제 그런 시선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며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는 “이제 좋은 의사가 되는 공부에만 몰두하려 한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따뜻한 의사가 되려고 한다”고 했다.

교수들에겐 서남대 교수 출신이란 이력이 딱지처럼 붙었다. 물리치료학을 가르쳤던 김모 교수는 광주 지역의 대학에 지원서를 넣었다. 세계 3대 인명사전으로 꼽히는 마르퀴즈 후즈 후 2018년판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연구 실적을 인정받았지만 서남대 출신이란 점이 발목을 잡는 듯하다. 김 교수는 “어려운 학교 상황에서도 노력하는 교수님들도 많은데 폐교 학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주홍글씨가 붙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윤영석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교수사회가 폐쇄적이어서 일반 회사와 동일하게 비교해서 다른 대학으로 옮기라는 건 가혹하다”며 지금은 급한 대로 시간강사 자리라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저는 그렇게 곤궁하진 않은데 외벌이 교수님들도 많이 있어요. 가장 가슴 아픈 건 중학생 딸이죠. (아버지의 실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남원=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