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 단장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키로 한 것은 나름 평가할 만하다. 김 상임위원장은 실질적 권한이 없긴 하지만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헌법상 국가수반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에서 빠져 있다. 평창올림픽에 오는 26명의 정상급 인사들과 급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2인자 대화가 가능하다.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김 상임위원장의 평창 언행은 향후 북·미 대화 가능성을 저울질해 보는 가늠자가 될 수도 있다.
냉정히 따져 섣부른 기대를 갖기엔 제반 여건이 녹록지 않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전날인 8일 대규모 열병식을 갖겠다는 입장에도 변화가 없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낮출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펜스 부통령은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했다. 북한 인사와 동선도 겹치지 않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평창 대화’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오히려 평창 이후가 더 걱정된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오는 4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즈음한 시기에 한반도 정세는 대결 국면으로 회귀할지 모른다. 이전의 대결 상태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새로운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긴 쉽지 않은 절박한 상황이다.
평창올림픽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 북·미 대화의 실마리라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도의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림픽에 앞서 북한 열병식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김 상임위원장과 만남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적극 주문해야 한다. 당장 성과를 내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북·미 만남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양측 간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한·미 공조의 틀을 흩뜨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눈앞의 올림픽 성과만 보지 말고 올림픽 이후의 안보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한도 정권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김 상임위원장은 최소한 일정 기간 핵·미사일 도발 중단이라는 대화 카드를 갖고 와야 한다. 진정 대화를 원한다면 열병식에서 전략무기 공개 등을 자제하는 기본적인 성의를 보여야 마땅하다. 김 상임위원장 방남을 일방적으로 야밤에 통보하는 무례한 행동을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 된다. 그래야 북·미 간 대화의 입구가 열릴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북한에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설] 北 김영남 방남, 북·미 대화 실마리 찾는 계기되길
입력 2018-02-05 18:07